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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다락

[국민] 파도소리 上 본문

좁고

[국민] 파도소리 上

문엔 2017. 6. 6. 20:08

 

 

 

 

 

 

 

 

 

 

 

 

 

95차 국민전력 내가 가르쳐 줄게요’, ‘아쿠아리움으로 참여합니다.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환청인 걸 안다.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소리에 휩쓸리고 만다. 어떤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파도가 날 덮쳐 완전히 잠겨버리길 기대한다.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떠내면, 내 앞에 그가 있기를.

여러 가지 빛깔을 띤 비늘이 양팔을 뒤덮은 그는 전설 속 물고기처럼 헤엄을 친다.

날쌘 몸짓으로 다가와 신기한 것을 보듯 나를 본다. 얼굴을 들이미는데 심지가 까만 동공 옆으로 에메랄드빛 홍채가 선연하다. 머리카락이 자꾸만 이쪽으로 끼쳐왔다.

그가 따라오라는 듯 앞서 헤엄치면, 물속이 어색한 두 팔다리를 휘적이며 그를 따라가야지.

하릴없이 인어를 닮은 아름다운 형상을.

 

 

 

 

 

 

 

 

 

 

파도소리

 

 

 

w. 문엔

 

 

 

 

 

 

 

 

 

 

 

 

 

 

 

 

 

 

 

들었어? 결국 방생하기로 했다며.”

……그래?”

. 다음 주에 러시아로 보낸대.”

 

 

같은 날 일하기 시작한, 말하자면 알바 동기인 주현은 지민의 유일한 소식통이었다. 여기, 은하수 아쿠아리움에서 혼자 수족관 가장 안쪽 밀키웨이룸을 관리하는 클린메이트인 지민은 언제나 모든 소문에 가장 느렸다. 물론 지민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탓도 있었다.

 

 

여긴 상어가 들어온다는 얘기도 있고 정어리쇼장으로 꾸민다는 얘기도 있고.”

…….”

근데 정어리가 아무리 떼로 들어온다고 해도 고객님들 성에 찰까?”

그러게.”

, 어쩌겠어. 별이랑 달이가 우리 간판이긴 하지만, 설마 없다고 망하겠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주현이 음향장비를 만지는 지민의 옆모습을 빤히 봤다. 관람객으로 꽉 들어찬 밀키룸은 약간 더웠다. 휴대폰 화면들은 저마다 앞에서 헤엄치는 희귀한 고래를 쫓고 있었다. 별과 달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마리의 흰고래(벨루가)가 펼치는 공연은 꽤 유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공연을 위해 은하수에 왔고 비교적 작은 규모의 아쿠아리움이 유지되는 밥줄이었다. 찰칵찰칵. 웅성거리는 소리에서 흥분과 설렘이 느껴졌다. 쭉 태평한 톤으로 말하던 주현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걸 안다. 숨 속에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왔다.

 

 

근데 우리 공주는 쫌 힘들지도.”

 

 

주현은 그가 인어공주 같다면서 공주라고 불렀다. 도저히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라고 지민은 생각했지만 눈이 예쁘잖아덧붙이는 소리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 그런 것도 같고. 때마침 짙은 파란색의 수트를 입은 아쿠아리스트가 찬찬히 발을 구르며 내려왔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퍼진다. 사진을 찍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주현이 벽에 있는 조명조절장치 앞에 바짝 붙어 섰다.

 

 

야야, 저거 못 보던 색깔 아니야?”

 

 

자신을 향해 뻗어온 손의 부산한 움직임에도 지민은 수조만을 빤히 보고 있었다. 음향이 들어갈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되니까.

그는 주변을 헤엄치는 벨루가들을 몇 번 쓰다듬듯 만지다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맨 얼굴에 내리깐 시선을 하고 관객들 쪽으로 다가오니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절로 잦아든다. 급작스럽게 몸을 뒤로 빼면, 밑에서부터 유리벽 전체를 타고 거품이 올라와 모습을 가렸다. 동시에 웅장한 음악이 귀를 때린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크리스마스의 꼬마전구처럼 점점이 빛나는 불빛들이 곳곳에서 피어난다. 마치 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동이 트듯 뒤쪽부터 서서히 빛이 밝아온다. 역으로 비추는 조명을 뒤로하고 부드러운 그림자들이 서로 얽히며 헤엄친다. 잠시 음악이 멈추고, 이내 은은한 빛깔의 전체 조명이 들어온다. 그러나 여전히 조금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 흰고래들만이 희붐하게 빛난다. 잠시 숨이 멎는 듯한 정적 후 아까와는 다른 신비한 멜로디 음악이 흐른다. 음악에 따라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벨루가들의 동작은 그의 손끝이 부리는 마법 같았다. 그리고 더욱 관객들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은 아쿠아리스트의 낯설고 아름다운 몸짓이었다. 위아래로 쏜살같이 왕복할 때는 싱크로나이즈 선수 같다가도, 몸이 물결처럼 부드럽게 움직일 때는 꼭 현대무용을 선보이는 댄서 같았다. 손끝과 발끝, 팔과 다리가 꼭 물속에 피어난 해초처럼 결에 따라 일렁였다.

유영한다. 그 단어는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짙은 파란색의 수트는 물속에 녹아 있으면서도 번뜩번뜩 빛이 났다. 노래가 점점 빨라진다. 벨루가들이 그의 머리 위로, 다리 아래로 지나갔다. 서로의 몸체를 이용해 반동을 주며 이리저리 빠르게, 그러나 서로를 감싸듯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물속을 헤엄치는 게 아니라 하늘을 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가 눈을 감고서 여러 동작을 하다가도 한 번씩 눈을 뜰 때면 관객들은 보석을 발견하듯 쳐다봤다. 유난히 큰 눈동자가 멀리서도 잘 보였다. 두 흰고래가 동시에 그의 품으로 달려들면 그것을 온몸으로 끌어안듯 받아내며 수면위로 박차고 올라간다. 동시에 물거품이 다시 올라오고 조명은 켜진 반대의 순서대로 차례차례 꺼져서, 다시 암흑이었다.

 

 

오늘 2시 타임 공연은 박수 소리가 유난히 길었다. 덩달아 기념촬영 시간도 길어졌다.

찰칵! 지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카메라를 빠져나오는 하얀 필름을 뽑아 장난꾸러기 삼형제 중 제일 큰 녀석에게 건넸다.

 

 

사진 나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게 잘 들고 있어.”

!”

 

 

형의 양팔에 매달린 동생들이 보여 달라고 떼를 쓰는데 흔들리면 안 된대!’하고 사진을 사수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다음 손님을 맞으려 고개를 드는데 수조 속 물안경 너머의 눈과 마주친다. 빙그레 웃는 모습에 얼른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어 눈에 감춘다. 피식 웃고는 장난스레 두 돌고래를 양옆구리에 끼고 포즈를 취한다. 그 모습을 뷰파인더로 놓치지 않고 본다. 앞에 서있던 서넛의 여고생이 귀엽다고 소리를 지른다. 귀엽다는 게 돌고래를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 이쪽 봐주세요! 지민이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는 멘트를 외치다 시피 말했다. 민망한지 저들끼리 웃던 여고생들이 얼굴 가까이 브이자를 그리며 예쁘게 웃는다.

찰칵! 지잉

늘 드는 생각이지만 셔터소리가 참 크고 경쾌하다.

 

 

 

 

 

 

아무리 봐도, 공주가 널 쳐다보는 거 같아.”

 

 

포토타임이 끝나고 30분간 주어지는 돌고래들의 휴식 겸 청소시간이 돌아왔다. 주현은 동네 슈퍼를 지키는 아저씨처럼 기념품 코너에 앉아있었다. 여전히 주머니에 야무지게 넣어놓은 손이 청소를 도울 마음이 없다는 걸 드러냈다. 지민은 혼자 열심히 밀대를 밀었다. 밀키룸은 엄밀히 말하면 지민의 구역이었다. 공연 때는 이래저래 신경 쓸게 많아서 옆 구역 담당인 주현이 도와줬지만 그 외 시간에는 혼자하기에도 충분했다. 대강 청소를 하고 다시 입구를 오픈한 다음 기념품 코너만 지키면 되니까. 하지만 주현은 자주 여기로 와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조잘댔다. 무던한 지민은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당연하지, 내가 카메라 들고 있는데.”

아니, 말고. 아까 니가 수조에 들러붙는 애 떼어 놓으러 갔을 때 확실히 느꼈어.”

너라면 안 보겠냐? 공연하는데 앞에서 알짱거리면.”

오늘만 두고 하는 말 아니라고.”

 

 

지민이 뭐가, 하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주현은 꾹 입을 다문다. 그세 지민은 바닥 청소를 끝내고 마치 플라네타륨처럼 꾸며진 공간의 별, 달 및 여러 행성 모양의 장식들 사이에 끼워진 쓰레기는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기 정체성 이래도 되나 싶었었는데, 의외의 컨셉이 잘 먹히는 모양이었다. 눈동자를 도로록 굴리던 지민이 심각하게 말했다.

 

 

……내가 뭐 실수했나.”

음악이야 틀어놓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너 본거 아닐까?”

첨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근데 아니야. 눈 안 마주쳐 나랑은. 너는?”

글쎄……. 날 왜 보겠어.”

몰라. 물어봐.”

 

 

주현이 새침하게 말하며 턱으로 수조를 가리켰다. 질리지도 않는지 수조에 발을 담그고 벨루가들과 장난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물어보긴 뭘 물어봐, 쟤 말은 할 줄 알아? 지민은 어깨만 으쓱했다.

 

 

 

 

주현을 통해 건너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정국은 좀 특이한 사람이었다. 아쿠아리스트들은 기본적으로 하루에 두 번의 입수 스케줄이 잡혀있고, 청소나 건강상태 체크를 위해 기껏해야 한 두 번씩 더 들어가는 정도였다, 그런데 정국은 하루에 세 번의 공연과 포토타임까지 소화하고도 심심할만하면 물에 들어가서 벨루가들과 노닥거리곤 했다. 은하수에서 메인수조 다음으로 큰 밀키룸의 수조에서 벨루가들과 동고동락한지 5년째라고 했다. 그 정도 되니 자기 애완동물로 생각하는 거 같다고. 아무리 그래도 보통 체력으로는 주어진 일만 하기도 힘들 텐데, 정국은 뭐랄까 물을 너무 편하게 생각했다. 사육사가 아니라, 세 번째 돌고래 같다. 별이, 달이를 대하는 그의 태도도 흡사 소꿉친구……같달까.

 

 

아니나 다를까, 결국은 입수를 하고 만다. 자꾸 정국의 옆구리를 찔러오는 돌고래들과 장난을 치는 모습을 주현은 흐뭇하게 쳐다봤다.

 

 

저 정도면 쟤들도 공주를 먼 친척쯤으로 생각할걸, 안 그래?”

 

 

입에 짓궂은 농담을 달고 사는 주현이여도 정국을 꽤 좋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지민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쿠아리스트들은 입수 외의 시간에 할 일도 많다고 들었는데, 그런 일들은 다 어쩌고 있는 걸까.

 

 

진짜 놀러온 사람은 저기 있다니까?”

 

 

주현이 눈을 휘며 소리 내 웃었다. 지민은 그 웃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주현의 눈에 수조가 비춰 보이는 것 같았다. 사실 아까부터, 정국이 입수한 후로는 수조 쪽은 절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정국이 저를 쳐다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현이 먼저 꺼냈을 때는, 깜짝 놀랐다. 사실 지민도 전부터 느끼고 있었으니까.

처음 음향을 맡게 됐을 때는 정말 긴장을 많이 했었다. 공연에서 음악을 트는 건 주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신경 쓰이는 작업이었다. 타이밍에 맞춰 음악을 틀고 곡의 파트마다 섬세하게 볼륨을 조절해야했다. 보통 아쿠아리움의 공연은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쉽고 재밌게, 스토리도 입히고 교육적 정보도 넣어서 꾸며지기 마련인데 정국의 공연은 조금 달랐다. 자칭, 타칭 행위예술에 가까운 공연을 하려다보니 조명이나 음악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정국의 욕심이기도 했고, 은하수만의 차별화를 위해 꼭 필요한 준비였다. 그 욕심에 희생되는 게 밀키룸 담당 클린메이트들의 운명이라는 게 비극이었지만. 지민에게 인수인계를 해준 전 담당은 땀까지 흘려가며 열정적으로 음향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그날 관람객 수에 따라 볼륨크기를 다르게 해야 해요. 사람이 소리를 먹거든요.’ 그에게서는 어떤 프로의식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공연하는 분이 예민해요, 소리에.“

 

 

배울 때는 하도 지시사항이 많아서 정신없었다. 실습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어찌어찌 현장에 투입 됐을 때는 멘붕의 절정을 찍었다. 공연 보랴, 음향 콘솔 보랴, 메모해둔 것들 체크하랴. 초반 한 주는 어떻게 공연했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마구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바쁘게 고개를 움직이며 해야 할 것들을 하고나면, 공연이 끝나있었다. 그래도 감각이 있는 건지, 빨리 적응을 하는 편이긴 했다. 2주차 막바지에 접어드니 제법 익숙해졌고, 드디어 공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런 쪽으론 감흥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몇 개의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공연인데도 볼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디테일이 좋았다. 그런 차이를 눈치 채기 시작한 게 한 달쯤 됐을 땐가. 그때부터는 음향 콘솔의 눈금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두 달이 됐을 때는 슬슬 정국의 컨디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딱 그쯤이었다. 평소보다 관객이 많았던 날. 그날따라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묘하게도 공연 중에 자꾸 눈이 마주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다. 거리도 있고 기술실 창문도 작은데, 잘못 본 걸 거야. 이튿날엔 자신이 뭔가 실수를 했나 싶었다. 하지만 딱히 불만이 들려오지도 않았다. 이후로 쭈욱 정국과 지민은 자주 눈이 마주쳤다. 큰 눈에 또렷한 동공이 부딪쳐오는데, 지민은 생각할 뿐이었다.

저 사람은 일 하는 중에 왜 저렇게 한눈을 파는 거야.

그렇다고 시선 피하느라 공연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 말이라도 걸어 볼 수 있으면 이유를 물어볼 텐데. 만남을 시도하거나 누군가에게 연락처를 물어보기도 이상하고, 뭔가 간지러웠다. 그냥 지민은 묵묵히 일 할 수밖에 없었다. 공연 땐 몇 번이고 눈을 맞추고 그 외 시간에는 절대 수조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뭐랄까. 뒤늦게 몰려오는 부끄러움 같은 게, 좀 괴로웠다.

무튼 지민은 정국이 영 불편했다. 아쿠아리스트와 일개 클린메이트의 활동 반경은 완전하게 분리되어있다시피 했다. 출퇴근 시간대도 다르고, 밥 먹는 시간도 다르고, 아쿠아리스트들이 이용하는 통로도 따로 있으며, 근무 환경 역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말 한 마디 섞어볼 일은 없는데 눈 마주칠 일은 많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내가 물어봐줄게.”

……?”

 

 

생각에 잠겨있던 지민이 고개를 들었다.

 

 

왜 쳐다보는지 물어봐 준다고. 다음 주 금요일에 맥주 한잔하기로 했어.”

, 저 사람이랑?”

 

 

지민이 수조를 등지고 팔만 뻗어서 뒤쪽을 가리켰다. 주현이 지민이 가리키는 쪽을 보다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민은 얼른 팔을 거뒀다. 당황해서 손이 마음대로 나가버렸다. 정국과 주현의 눈이 마주친 모양이었다. 둘은 종종 저렇게 인사를 나누곤 했다.

 

 

. 포유류관 담당 은지 알지? 퇴근하다가 만나서 말 텄대.”

……마주칠 수도 있구나.”

기다린 거지. 정직원들이 훨씬 늦게 나오잖아. 암튼, 알바들이랑도 친해지고 싶다고 했대. 그쪽 몇 명이랑 우리 쪽 몇 명이랑 사이좋게 마시기로 했어.”

 

 

무슨 운동 팀 가르듯 말하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근래 본 주현의 모습 중에 가장 의욕이 넘쳐보였다. 지민은 어쩐지 맥주를 마시거나 알바생들과 떠드는 정국이 상상이 안됐다. 아니 말을 한다는 거 자체가 상상이 안됐다.

나 진짜 저 사람을 뭘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하다가 번뜩 스친 생각에 지민이 주현의 옷소매를 잡았다.

 

 

아니 잠깐만, 진짜 물어볼 거 아니지?”

물어볼 건데?”

하지 마. 당연히 착각이지. 착각일 게 뻔하잖아.”

그건 물어보면 알겠지.”

왜 나 없는데서 내 얘기를 해?”

, 무슨 초딩들이 뒷담 까는 것도 아니고 친히 너한테 보고까지 하는데……근데 왜 그렇게 예민해?”

? 아니 난…….”

솔직히 넌 안 궁금해?”

 

 

지민이 아주 잠깐 생각에 잠겼다. 궁금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안 그러게 하는 방법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떠보는 게 명확한 주현의 말투가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 궁금해.”

 

 

주현이 김샌다는 듯 기운 빠진 표정을 지었다.

 

 

. 안 궁금하면 할 수 없지. 일단 너도 그날 나와야겠네.”

내가? ?”

질문 못하게, 내 입 막으려면.”

 

 

지민이 할 말을 잃고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주현이 지민의 넋 나간 표정을 마음껏 비웃어주다가 어께에 손을 올리며 비밀 이야기로 하려는 듯 다가왔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공주 위로해주려고 마련한 자리래. 알잖아. 공주랑 별이, 달이 각별한 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지민이 주현의 손을 쳐내고 청소도구들을 들고는 창고로 들어갔다. 주현은 낄낄 거리다가 괜히 기념품 코너 인형들을 정리하는 척 만지작댔다. 오픈을 위해 입구로 걸어가는데 수조에서 반사되는 빛에 의해 별이, 달이와 정국의 움직임이 설핏 느껴졌다. 사실 물의 움직임인지, 세 마리 고래들의 움직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얼마 전 모 아쿠아리움에 전시되었던 벨루가 네 마리가 일주일 사이 모두 폐사한 사건이 있었다. 좁은 수조에서 생활하며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하고, 학대까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일로 한동안 전국이 떠들썩했다. 여러 동물보호단체가 나섰고 서명운동이며 시위, 아쿠아리움 불매 캠페인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끝끝내 곳곳의 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 방생을 결정했다. 국내에 몇 없는 벨루가를 보유한 은하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곳의 쇼를 좋아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은하수는 다르다며 반대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벨루가로 공연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별이, 달이의 방생이 홈페이지에 공지되고 일주일이 지났다. 매일 같이 미친 듯 몰려드는 관람객에 지민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몇몇은 더러 지민에게까지 말을 걸어왔다. 알바한지 꽤 된 지민을 익숙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타 아쿠아리움에 비하면 관객들 평균연령도 높고 재방문율도 높은 편인 탓에 지민은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

 

 

, 죄송한데요. 이제 달이랑 별이 못 본다는 게 진짜예요?

며칠에 가는 거예요?

방생 직전까지 공연하는 거예요?

공연하는 조련사분은 계속 하시는 거죠?”

별이, 달이 공연 보려고 얼마나 많이 왔었는데요. 저 낯익지 않아요?

그럼 이제 여기에 뭐 들어와요?

홈페이지에 공지했다고요? 나만 몰랐나.

아쉬워서 어쩐대요?

그쪽도 많이 아쉬우시겠어요.

 

 

……, .”

 

 

어느덧 3일 후면 별이, 달이가 떠날 때가 되었다. 오늘의 마지막 타임 공연과 포토타임까지 마치는 동안 지민은 어딘가 멍해있었다. 아까 관람객이 한 질문이 잊히지 않았다. 정국을 피하느라 덩달아 친해지지 못한 별이, 달이였다. 정국이 없을 때 몇 번 다가가보아도 자기를 본체만체하곤 했었다. 벨루가들은 사람을 잘 따르고 똑똑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교육 받을 때 그랬다고……. 뒤늦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땅만 보고 밀대를 밀던 지민이 이끌리듯 고개를 들어 수조 안을 쳐다봤다. 다행이 정국은 없었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저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진짜 이번 주만 지나면 볼 일 없는 거야?”

 

 

돌아올 대답도 없는데, 밀대자루 끝에 손등을 올려 턱을 괴고는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유유자적 저들끼리 헤엄치며 오가는 것이 평화로워 보인다. 지민이 밀대를 질질 끌며 수조로 다가갔다. 꽁꽁꽁 노크하듯 살살 두드려보는데 벨루가들은 장난치듯 서로 틱틱 건드리느라 바쁘다. 그 모습을 보며 갑작스럽게 감성적이 되는데, 스스로도 말릴 길이 없었다.

예쁜 자식들, 뭐가 그렇게 좋냐. 지민은 유리벽에 이마를 대고 한참이나 별이, 달이를 지켜봤다.

 

 

잘 살아.”

 

 

중얼거리는데, 어느새 왔던 건지 정국이 물속으로 들어왔다. 청소를 위해 잠수 장비를 갖추고 손에는 도구를 들고 있었다. 벨루가들이 재빠르게 정국에게로 몰려갔다. 지민은 얼른 고개를 돌리고 유리에서 멀어졌다. 살짝 울 뻔 한 게 부끄러워서 귀에 열이 올랐다. 별이, 달이는 특히 청소하는 정국을 괴롭히는 걸 좋아했다. 뭘 알고 그러는 건지, 덕분에 정국은 늘 남들 배의 시간이 걸려 청소를 해야 했다. 동시에 두 돌고래의 상태도 살폈다. 입을 열어 체크해보려는 정국의 손을 물고 연신 삼키는 시늉을 했다. 물그림자가 바닥에 비춰 일렁이는 걸 보면서 지민은 눈시울이 더욱 붉어졌다. 즐겁게 꼬리를 흔드는 돌고래들에 의해 수조가 넘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외면하기 힘든 존재감들이 저 건너에서 일렁였다. 그럴 때면 지민은 너무나 고개를 들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들다가 마주쳐버리면, 자신의 모든 걸 들킬 것만 같은 무서움이 동시에 일었다. 공연을 할 때, 사진을 찍을 때, 자신을 보는 정국의 눈이 그랬다. 꼭 동물의 눈을 오래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많았던 지민은 그런 눈을 잘 알았다. 말이 안 통해도, 말 안 해도 알 거 같은 그런 거. 오늘은 좀 심했다. 곧 별과 달이 떠난다.

고작 클린메이트인 자신도 이렇게 참담하고 쓸쓸한데, 정국은 어떨까. 그가 어떤 감정일지 너무 궁금하고 걱정됐다. 결국, 몸을 반만 돌리고 천천히 눈만 올려 떴다. 시야에 정국이 들어왔다.

 

 

오늘처럼 주현이 오프인 날에, 지민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운 채 청소를 했다. 엄밀히 말하면 분리된 공간이었고 별이 달이도 있는데, 단 둘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게 싫었다. 혼자 긴장해서는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바보같이.

지민은 숨을 삼켰다. 시야에 들어온 정국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눈을 맞춘 건 처음이라 완전히 사고가 멈춰서는 무방비하게 쳐다봤다. 볼 줄 몰랐다는 듯 살짝 몸을 떤 정국이 이내 씩 웃었다. 자신의 얼굴이 빨개졌다는 것을, 지민은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다. 슬픔은 멀리 도망간 지 오랜데 눈시울은 더욱 붉어졌다. 머리는 돌아서라고 명령하는데 몸이 꼼짝을 안했다. 게다가 정국이 지민 쪽으로 다가오는데 뒤로 주춤 물러서면서도 눈은 여전히 그쪽에 머물렀다.

그만 봐, 그만 봐, 그만 봐.

머릿속의 아우성은 거세졌다. 지민의 코앞까지 온 정국이 수화하듯 손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였다. 순간 뭐하는 건가 싶어 응? 하는 눈으로 보자, 정국은 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답답한지 입에 물고 있던 호흡기를 빼고는 입모양으로 말을 했다. 호기심이 동한 지민이 대체 뭐라는 거야, 하며 입을 유심히 쳐다봤다. 몇 번 같은 입모양을 반복하는 걸 보며, 그대로 따라 소리 내서 유추해본다. 마주보고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주현이 봤다면 박장대소 했을 거다.

 

 

내이? 내일? 내일, , , ? 내일 혹……? 와오, 와요, 내일 혹 와요……. 내일 꼭 와요?”

 

 

지민이 되풀이하는 입모양을 보고는 정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호흡기를 물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OK사인을 그려 내밀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올 거냐는 물음이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데 지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싫다고 할 수는 없잖아. 저렇게 해맑게 물어보는데…….

정국이 눈을 접으며 입 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모습에 지민이 휙 돌아섰다. 밀대를 끌고 갈지자를 그리며 다급하게 창고로 들어간 지민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느라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꼭 오라던 정국의 입모양이, 입술이, 그날 밤 지민의 머릿속을 떠돌았다. 거절할 수 없는 눈을 가진 게 너무 미웠다. 안 가면 그것들이 평생 따라다닐 것만 같아서, 지민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주현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오는 중에 주현이 하도 놀려대서 머리가 다 아팠다.

 

 

진짜 내 입을 막으러 온 거야, 예쁜 여자애들 사이에 끼고 싶어서 온 거야?”

둘 다 아니야.”

그럼 뭔데? 공주 위로해주러?”

 

 

문득 주현이 자꾸 자신과 정국을 연관 지으려는 의도가 궁금해졌다. 정국이 저를 쳐다봤든 아니든 주현과는 상관없는 일일뿐더러 남자끼리 눈 좀 맞춘다고 그렇게 얘기꺼리가 되지도 않을 텐데. 주현이 정국을 이성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의문이었다. 지민은 알 수 없는 주현의 속내를 들여다보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보다가 말했다.

 

 

네가 나도 사회생활 좀 하라며.”

 

 

입구를 막아서고 떠보기를 시전 하는 주현을 밀고 직접 문을 열어버렸다. 장소는 세련된 분위기의 호프집인데 가운데 있는 커다란 메인테이블이 우리의 자리였다. 1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얼굴만 낯익은 여자들이 가득했다. 나빼고 다 여자라니. 들어오자마자 나가고 싶었다. 유니폼을 입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라 더 적응이 안됐다.

 

 

혹시 오늘 단체미팅 분위기야?”

아니야. 알바는 원래 여자애들이 많잖아.”

그런가…….”

너 나 잘 말려라. 술 들어가면 자물쇠가 고장이 나요.”

괜히 그러지.”

 

 

짜증이 올라온 지민이 먼저 나온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자리를 만들었다는 은지가 정국의 일행은 조금 늦는다고 얘기했고, 곧 알바의 고충에 대한 수다 한판이 벌어졌다. 지민이 아는 사이라고 할만 한건 주현과 그나마 말 좀 섞어본 은지뿐이었지만 서로 소개를 나누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실 술 좀 들어가서 섞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도 나누고 하는 건데, 지민은 그리 친화력 있는 성격은 못됐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맥주가 들어가고 나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서 고개만 끄덕끄덕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주현과 지민, 그리고 나머지로 해서 대화 팀이 둘로 갈라졌다.

그렇게 맥주 오백 하나를 다 비워가는 데 가장 안쪽에 앉아있던 은지가 조금 큰 소리로 지민에게 말을 걸어왔다. 대화주제가 자연스럽게 별이와 달이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지민오빠 밀키룸은 어때요? 요즘 완전 정신없죠?”

 

 

주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뻥튀기를 씹던 지민이 어설프게 웃었다. 은지는 지민과 눈을 맞추며 넉살좋은 미소를 날렸다.

 

 

, 그렇지 뭐. 요즘 손님 많아서 다들 바쁘잖아.”

, 여기는 내가 다 도와주잖아. 나는 월급 두 배로 받아야 돼.”

 

 

주현의 농담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밀키룸이 다른 구역에 비해 고생스럽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니데. 지민씨 혼자 고군분투하시던데.”

 

 

입구를 등지고 앉은 지민의 뒤쪽으로 장난기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낯선 목소리에 몸을 틀어 돌아본 지민이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까만색 티에 약간 큰 흰색 후드집업을 걸친 정국의 모습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낯설었다. 평상복을 입은 정국은 수트를 입었을 때보다 어려 보였다. 고개를 까딱하자 덜 마른 머리가 앞으로 쏟아졌다.

 

 

안녕하세요.”

 

 

약간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하던 지민이 정신이 드는 걸 느끼며 몸을 앞으로 휙 돌렸다. 그 사이 정국의 일행들도 자리를 잡았고, 지민의 양쪽으로 인사가 이어졌다. 알바생 5명과 정직원 4명으로 테이블이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정직원들은 다 남자여서 지민만 빼면 너무 알맞게 44였다. 아니, 미팅 분위기 아니라며. 주현을 쳐다보자 턱을 괴고는 지민을 보고 씩 웃는다. 아 진짜 괜히 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기다리다 우리끼리 취할 뻔 했네.”

미안해요. 마무리가 늦어져서.”

 

 

지민은 제법 친한 사이인 듯 대화를 나누는 정국과 주현이 신기해서 조심스레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뭐 좀 시켰어요?”

일단 치킨 두 종류 시켰는데 아직 안 나왔어요. 좀 늦네요?”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여기요. 메뉴판 좀 주세요.”

 

 

돌고래들이랑 노는 모습을 보고 장난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더 살가운 사람이라서 의외였다. 아까까지도 각자 맥주만 들이키던 사람들이 뭉쳐서 건배도 하고 꽤 시끌벅적 해지기 시작했다. 정국은 사람들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챙기고, 분위기도 잘 이끌고 있었다. 자기소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이름은 알아야하지 않겠냐고 말을 꺼낸 것도 정국이었다.

 

 

저는 전정국이고요. 여기 별이 달이 모르는 사람 없죠? 제가 걔네 아빱니다.”

, 별이 달이가 정국 씨를 키우는 건 아니고요?”

. 너무하시네.”

 

 

모두 웃음이 터졌다. 아까부터 둘은 쿵짝이 잘 맞았다. 그걸 지켜보는 기분은, 뭐랄까……잘 어울린다? 키도 크고 스타일도 좋은 주현은 알바 할 때의 무기력함은 날리고 시원스런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스무 살에 가까운 어린 알바생들은 어느새 두 사람 이야기에 짝짝 박수를 치는 방청객으로 변해있었다. 간간히 둘이 잘 어울린다고 속닥대는 것도 들려왔다. 지민은 그저 정국 옆에 앉아있는 자신이 다음 차례가 될 것 같아 긴장감에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데 주현이 먼저 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윤주현이고요. 혜정이랑 메인수조 쪽 담당인데 주 업무는 밀키룸 보조입니다. 여기 밀키룸 담당 박지민씨가 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장단에 맞춰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너무 생색낸다.’ 하며 은지가 받아쳤다. 주현은 이제 한껏 흥이 오른 것 같았다. 내뱉는 말의 대부분이 농담과 장난이었다. 이번엔 사람들이 지민을 쳐다봤다. 호명된 사람이 다음 소개를 하는 시스템인가보다. 안 그래도 낯가림이 심한 지민이 필요이상의 집중이 제게로 오는 느낌에 머리가 굳어버렸다.

 

 

……. 박지민입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밖에 나오지 않는 지민이 몸을 웅크리며 고개를 숙였다.

 

 

지민오빠, 왜 점점 작아져요? 귀여워~”

 

 

주현만큼 취기가 오른 은지가 지민의 자존심을 살살 건드는 농담을 건넸다. 사실 아까부터 알바생들에게 귀여움 쪽으로 소비되는 지민이었다. 떡 벌어진 정국을 보고 자꾸 귀엽다고 하는 여고생들처럼. 그래도 그나마 기분이 업된 사람들이 어색한 자기소개에도 좋게 웃어 넘겨서 다행이라고 지민은 생각했다.

 

 

. 나 박지민씨 목소리 처음 들어요.”

 

 

타이밍 좋게 정국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과장되게 말하는데, 알바생들이 진짜요?’하며 호응을 보내왔다.

 

 

만날 보는데 목소리 들을 기회가 있어야죠. 다른 말도 해주면 안돼요?”

 

 

진짜 신기한 듯 몸을 살짝 뒤로 빼고 지민을 쳐다보는 정국에 또 테이블에 웃음이 퍼졌다.

 

 

정국 오빠 뭐야. 하지 마요. 지민 오빠 더 작아져요.”

, 너무 오바했나.”

 

 

제 머리를 헝클인 정국이 미안해요, 하니 지민은 눈도 못보고 손만 내저었다. , 맥주 다 마셨네요? 여기 오백 하나 더요! 정국이 지민의 맥주잔을 챙겨준 것을 계기로 몇몇이 맥주를 더 시켰고, 몇 명씩 찢어져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또 그렇게 한 참 지나니 자리도 섞이고 어디는 소개팅 분위기인 곳도 있고, 서로 궁금했던 걸 묻기도 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리고 테이블 가운데쯤에서 이쪽 얘기에 끄덕 저쪽 얘기에 끄덕 하던 지민은 어느새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 못하고 혼자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슬슬 졸음도 몰려와서 눈치 봐서 일어나야겠다, 멍하니 생각하던 중이었다.

 

 

여기 오백 하나 더요!”

 

 

화장실에 다녀온 정국이 자리에 앉으며 맥주를 시켰다.

 

 

, 저 더 못 먹는데…….”

 

 

지민이 비어있는 제 잔을 보고 양손을 젓는데 정국이 풋,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제 건데요.”

 

정국이 제 잔을 들어보였다. 아까부터 잔이 비기 무섭게 대신 맥주를 주문해주는 정국에 당연히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던 것이다. . 하고 잠시 멍하게 정국의 잔을 쳐다본 지민이 손바닥을 맞댄 두 손을 코앞에 대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혀가 꼬인 건 아닌데, 확실히 좀 멍한 티가 났다. 정국이 푸하하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취하셨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진짜 가야겠다. 지민이 속으로 혼잣말 겸 대답을 했다.

 

 

지민씨 술 약하구나.

, .”

 

 

그래도 꼬박꼬박 대답을 하는 게 귀엽다는 듯 정국이 베실 웃음을 흘렸다. 사실 정국도 딱 기분 좋게 취해있었다.

 

 

멍해가지고. 밀면 뒤로 넘어가겠어.”

 

 

그렇게 말하는 정국의 목소리가 좀 다정해서 지민은 또 멍하니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자꾸만 스륵 눈이 감겼다. 정신을 챙기려 눈을 부릅 떠보다가 가야겠다는 말을 하려고 정국을 보니, 그쪽도 역시나 졸린 눈으로, 한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지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민은 숨을 들이쉬며 어깨를 굳혔다. 역시 좀, 가깝다.

 

 

같이 일한 지 몇 달 만에 이런 자리가 생긴 게 신기하네요.”

…….”

엄밀히 말하면 같이 일했다고 하긴 무리가.

 

 

저요, 지민씨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

거짓말.

 

 

자리를 좀 더 빨리 만드는 건데.”

…….”

물속에서 볼 때랑 피부색이 다른 것 같아.

 

 

왠지 좀 용기가 안 나서요.”

……왜요?”

 

 

아 이런 생각 그만 해야 돼.

지민이 자꾸만 떠오르는 딴생각을 밀어내려 물었다. 옆에서 보기에는 두 사람이 꼭 잠꼬대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나 안쳐다봤잖아요.”

 

 

천천히 눈동자만 굴려 망설임을 표시하던 정국이 이내 똑바로 눈을 맞춰오며 내뱉는 말에 지민은 시간이라도 멈춘 것 같았다. 주변에 사람은 많고 시끄러운데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보이고, ‘내일 꼭 오라고말하던 정국의 눈동자와 입술만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용기를 내서 한 말일까, 싶으면서……. 사실 그런 것보다도 너무나 입을 맞추고 싶었다. 입을……. 입을?!

지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끼익 쿠당탕

 

 

어찌나 힘차게 일어났는지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지기까지 했다. 정국이 깜짝 놀란 것은 물론 호프집의 모든 시선이 지민에게 와서 박혔다.

 

 

, , 먼저 가보겠습니다. 너무 취해서……!”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나가는 지민의 뒷모습을 모두 눈으로만 쫓았다. 정국만이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지민의 뒤를 따라갔다. 취했다기엔 너무 민첩한 몸짓에 정국도 덩달아 급해졌다. 지민은 일주일 전에 먹은 술까지 깨는 것 같았다. 결국 계단을 내려가다가 삐끗하는 지민을 정국이 뒤에서 붙잡았다. 지민의 가슴이 부풀었다 가라앉는 게 보일 정도로 크게 숨을 쉬고 있었다. 숨이 찬다기보다는 무척 놀란 사람 같았다.

 

 

지민 씨 왜 그래요? 내가 뭐 기분 나쁘게 했어요?”

아뇨. 아니에요. , 저 원래 취하면 집에 가야 돼요.”

아니, 그래도 이렇게 급하게…….”

 

 

지민이 정국의 팔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지민 씨, 하며 뒤를 쫓는 정국이 포기할 것 같지 않자 지민은 정국을 향해 뒤돌아섰다. 그리고 간절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은 정국의 얼굴 앞으로 뻗어 시선을 가리면서.

 

 

제발!”

…….”

제발, 따라오지 마세요. ?”

 

 

정국이 어깨를 멈칫하는 게 보였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지민은 속으로 스무 번도 더 외쳤다.

자신의 방어가 먹혔다고 생각한 지민이 재빨리 돌아서서 거의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땐 정국을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들기 전까지, 지민에게는 아무것도 안보이고 안 들리던 그 순간의 연장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지민이 잠드는 순간까지도 입가에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기분 나쁘게 한 건 정국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

 

 

 

 

 

 

연쇄 전력 지각범,,

심지어 반쪽짜리,, 반성합니다.

앞으로 섵부르게 전력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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