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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파도소리 下 본문

좁고

[국민] 파도소리 下

문엔 2017. 6. 10. 05:52

 

 

 

 

 

 

 

 

 

 

 

 

 

95차 국민전력 내가 가르쳐 줄게요’, ‘아쿠아리움으로 참여합니다.

 

 

 

 

 

 

 

 

 

 

 

 

 

 

 

 

 

 

 

 

 

 

 

 

 

 

 

 

 

3.

 

  

 

 

 

 

 

 

 

씻고 나와요.”

……?!”

이걸로 갈아입고요.”

 

 

도착한 곳은 라커룸이었다. 정국은 지민의 품에 잠수복과 수건을 안기고는 다짜고짜 옆에 딸린 샤워실에 밀어 넣었다.

 

 

, , , 제가 이걸 왜 입어요?”

시간 없어요. 얼른 하고 나와요.”

아니, 설명이라도…….”

지민씨. 내가 지민씨한테 나쁘게 하겠어요?”

…….”

 

 

정국이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일 거라곤 생각 못했다. 그래도 시간이 없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너무 잘 알아서, 지민은 눈 딱 감고 샤워기 앞에 섰다. 오늘은 정국이 하는 대로 휘말려주자는 결심이었다.

끼릭, 쏴아

수도꼭지가 무겁게 돌아갔다. 옷도 안 벗고 물부터 틀어 온도를 가늠했다. 차가웠던 물이 서서히 따듯해졌다. 그제야 셔츠부터 벗기 시작하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매일 출근하는 이곳이 자꾸만 낯설게 느껴졌다.

잠수복을 낑낑대며 입는데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다. 특히 손목이며 발목이 너무 조여서 불편했다. 어찌저찌 입고 뒤에 지퍼를 올리려는데 어디에 걸린 건지 잘 올라가지 않았다. 끙끙대며 앓는 소리가 밖까지 세어 나간건지 정국의 목소리가 문을 넘어오자 지민은 바짝 긴장했다.

 

 

많이 불편해요?”

, 아뇨 뒤에 지퍼가.”

.”

 

 

철컥.

정국이 욕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민은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와중에도 얼른 뒤로돌아 지퍼가 활짝 열린 등을 숨겼다. 행동에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돌아서 봐요. 올려줄게요.”

제가 할게요!”

시간, 시간.”

 

 

정국이 지민의 몸을 휙 돌렸다. 허리께에 있는 지퍼를 잡고 올리려는데 옆에 천이 끼어서 잘 올라가지 않았다. 정국이 지퍼를 이리저리 돌리며 빼내려고 애를 쓰는데 잘 되지 않았다. 지민은 아무래도 상황이 너무 민망해서 자꾸 몸을 꼼질거리게 됐다.

. .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지퍼를 고치느라 허리근처에 왔다 갔다 하는 정국의 손이 신경 쓰여 딱 죽을 것 같았다. 수증기 때문인가? 여기 공기, 왜 이렇게 탁하지. 숨 막혀.

드디어 끼인 부분이 빠졌다. 정국이 됐다를 외치며 시원하게 지퍼를 올렸다.

 

 

, 지민씨한테는 좀 큰가.”

 

 

어깨나 허벅지가 조금 큰 수트를 보며 정국이 매무새를 만져줬다. 지민은 아까 지퍼를 올릴 때부터 오소소 돋았던 소름과 함께 뒷덜미 솜털이 삐죽삐죽 곤두섬을 느꼈다. 긴장 그 자체였다.

 

 

, 이거 신으시고.”

 

 

정국이 지민 앞에 쪼그려 앉아 아까 들어오며 발치에 던져둔 스킨슈즈 한쪽을 내민다. 너무 자연스럽게 내미니 지민도 얼결에 정국의 어깨를 잡고 발을 밀어 넣었다.

 

 

됐다. 걷는 느낌 좀 이상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다시 밀키룸으로 향하는 길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차가움도 그렇고 미끄러질 것 같아서 어색하게 걷다보니 더 넘어질 것 같았다. 보다 못한 정국이 제 팔을 내밀고 잡으라고 해서 본의 아니게 매달리다시피 걷고 있었다.

 

 

근데 잠수복까지 입어야 해요? 위생 문제인가?”

, 그렇기도 하고요.”

전 꼭, , 친해져야 하는 건 아닌데…….”

왜요. 아쉬워서 울기까지 했던 분이.”

그건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런 거죠. 그쪽이 하도 심하게 울었다고 해서.”

지민씨 만큼은 아닐걸요. 내가 눈이랑 귀가 몇 갠데.”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정국보다 지민의 얼굴이 더 부어있었다. 몸져누울 정도로 울었다던 사람은 저기 있는데 왜 자신만 피폐한 건지, 지민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만지면,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지민씨 좋아해요, 그 녀석들.”

안 믿어요.”

혼자 낯가리고 있는 거라니까.”

정들면……서로 힘들어 질 거잖아요.”

 

 

지민이 머뭇거리며 정국을 올려다봤다. 정국이 잠시 눈을 맞추다가 정면에 보이는 계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도 않을 거예요.”

 

 

정국이 몸을 살짝 비키며 지민이 먼저 계단을 오르게 했다.

 

 

그나저나, 수영은 좀 해요?”

 

 

 

 

 

 

 

못 해요!”

할 수 있어요.”

못 해요. 어쩐지 잠수복은 오바다 했어.”

 

 

지민이 벽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정국은 자꾸 비실비실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막지 않았다.

 

 

얌전히 입 길래 동의하는 걸로 받아들였는데요?”

난 그냥 끽해야 발이나 담그는 줄 알았죠!”

무슨 계곡 놀러왔어요? 발이나 담그게. 빨리 이리와요.”

 

 

정국이 지민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얼른 피한다. 날쌘 동작에 정국이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쳐다보는데, 뒤에서 별이 달이가 신나서 물을 뿌리고 난리가 났다. 촤악촤악, 바닥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시원스레 울렸다.

 

 

가라앉아버릴 거예요.”

가라앉아야죠. 잠수하는 건데.”

저 쇼크 올지도 몰라요.”

초등학생들도 다 해요.”

쟤네가 저 잡아먹을 거예요.”

못 먹어요. 맛없어서.”

다이빙체험은 자격증 있는 사람만 되잖아요! 규정이에요, 규정.”

지민씨.”

 

 

정국이 한숨을 푹 쉬었다. 지민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리곤 벽에서 떨어져 나와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혼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다. 머리꼭지에 무서운데 어떡해요. 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 태도였다.

아 정말. 이 사람을 어쩌지. 정국이 한 발 가까이 다가선다.

 

 

그렇게 무서우면 어쩔 수 없지만.”

…….”

나 그렇게 믿음이 안가나.”

제가 겁이 많아서요.”

내가 잘 가르쳐 줄게요. ?”

 

 

지민이 눈만 올려 떠서 정국을 보더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누굴 이겨 먹겠어요.

 

 

오케이.”

 

 

정국이 장비를 가지고 오는 사이 지민은 한숨과 함께 벨루가들을 봤다.

나 맛없어.’

속으로 말하는데도 별이 달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파도소리

 

 

w. 문엔

 

 

 

 

 

 

 

 

 

 

 

정국이 장비들을 하나하나 착착 채워주는 걸 지민은 수조에 발을 담그고 앉아 그대로 받아내고만 있었다. 아까부터 잘은 한숨만 스무 번은 쉰 듯 했다.

 

 

재밌어서 또 해달라고 수조에 매달리지나 마요.”

그냥 안 하면…….”

, 이거 물고.”

 

 

정국이 공기통과 연결된 호흡기를 지민의 입에 물렸다.

 

 

숨 쉬어 봐요. 들이쉬고, 내쉬고. 천천히.”

 

 

지민이 힘겹게, 하지만 열심히 숨을 쉬어본다.

 

 

괜찮죠? , 가봅시다.”

 

 

정국이 빠르게 장비를 착용하고는 먼저 물에 들어가서 지민의 양팔을 잡고 끌어당긴다. 지민은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도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수도 없어, 야금야금 나아갔다.

 

 

긴장하면 안돼요.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해요.”

 

 

말은 쉽죠.

지민이 정국의 양팔을 꼭 잡고 함께 천천히 물에 잠겼다. 그래도 지민은 정국을 잘 따라왔다. 수영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물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다행이었다. 정국의 잔잔한 시선을 마주하며 천천히 물에 적응하는데, 벨루가들이 다가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겨우 마음을 다스리던 지민이 다시 바짝 긴장했다.

나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니거든?

그러다 별이가 지민의 한쪽 발을 물고 당겨오니 지민은 순식간에 겁을 집어먹었다.

나 안 잡아먹기로 했잖아!

호흡기만 아니면 당장 괴성이라도 질렀을 거였다. 정국이 밀어내봤지만 별이 달이는 장난을 치는 줄 알고 더 좋아했다. 지민은 평정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며 동작이 커지고 중심이 무너졌다. 이내 정국의 몸까지 밀어내고 위로 향하려 팔을 휘젓던 지민이 입에서 호흡기를 빼버렸다. 급하게 숨을 쉬려다보니 호흡기가 답답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정국이 놀라서 그대로 지민의 몸을 받쳐 안아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푸하! 하아, 하아…….”

 

 

난간을 붙잡고 수경을 벗으며 연신 콜록대는 지민의 등을 정국이 도닥였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꽤 잘 하고 있었는데.”

 

 

지민이 울망한 눈으로 정국을 돌아봤다.

 

 

못 하겠어요.”

 

 

정국은 자신이 너무 안일했나 싶었다. 체험 진행은 많이 해봤다지만, 확실히 다이빙 자격증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었으니까. 여기까지도 정국이 많이 욕심을 부린 거긴 했다. 정국이 그만 포기해야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지민의 호흡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래도 물속에 있을 때 기분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민이 조금 미련 섞인 눈으로 정국너머 수조로 시선을 보냈다. 그런 지민을 놓칠 리 없는 정국이었다. 이내 정국이 수경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웨이티드와 공기통 등 장비를 훌훌 벗어 단 위로 올렸다. 결국 오리발만 빼고 모든 장비를 뺀 정국이 지민의 손을 잡았다.

 

 

지민씨. 내 눈 잘 봐요.”

 

 

진지한 목소리에 지민의 물기를 담은 눈이 정국을 향했다

 

 

벨루가들이 물속에서 어떤 소리 내는지 알아요?”

…….”

카나리아 소리를 내요.”

……?”

아주 예쁜 새소리. 한 번 들으면 절대 못 잊을, 아름다운 소리일 거예요.”

…….”

듣고 싶지 않아요?”

 

 

정국의 눈을 길게 봤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데 이상하게 자신의 심장 박동이 가깝게 느껴졌다.

지민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은 입 꼬리만 올려 싱긋 웃고, 지민의 손을 서서히 당긴다. 지민의 몸이 미끄러지듯 물에 빨려 들어간다. 정국은 지민을 꼭 안고 입에 호흡기를 물려준다.

 

 

내가 잘 잡고 있을 게요.”

 

 

정국이 그대로 천천히 둘의 몸을 가라앉힌다. 물에 잠기는 순간 지민은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정국이 지민의 수경에 노크를 했다. 눈을 뜨니 정국의 얼굴이 전보다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수경이 돋보기라도 되는 것 같았다. 바닥까지 가라앉아서 잠시 그대로 있었다. 처음과 다른 게 물의 온도가 높아졌다고 느꼈다.

지민은 생각했다. 얕게 떨리는 듯한 심장박동이 전해지는 건 착각일까. 그게 너무 신기했다. 물속에서도 심장이 뛰는 구나. 내 심장도 이렇게 미친 듯이 뛰고, 당신의 심장도 그렇게 뛰고 있다면. 그건 조금 기적일 텐데. 지민은 경이로운 기분을 느꼈다. 물속에서도 눈물이나 나나. 그건 좀 무서운데.

문득 수조 밖으로 밀키룸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이곳은 참 낯설고 낯설다. 정국이 천천히 몸을 놓아주는 게 느껴졌다. 그대로 살짝 비켜서니 별이 달이의 모습이 보였다. 한쪽에서 바닥에 배를 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쩐지 기가 죽어보였다.

그때 정국이 뒤에서 지민의 허리를 잡아왔다. 놀란 지민이 몸을 떠는데 부웅, 하며 밀리는 느낌이 났다. 정국이 지민을 밀어서 벨루가들 앞에 데려다 놨다. 벨루가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정국이 먼저 손을 내밀어 별이를 쓰다듬었다. 정국의 손길에, 별이가 강아지처럼 얼굴을 부벼왔다. 지민은 눈앞에서 이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것도 직접 물속으로 들어와서.

달이는 지민의 옆구리 쪽으로 다가왔다. 냄새를 맡듯 움찔 거리며 지민을 관찰했다. 정국이 지민의 손을 잡아서 달이 쪽으로 내밀어 주었다. 지민은 용기를 내 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달이가 그 손길을 느끼다가 점점 더 몸을 들이밀었다. 거의 안기다시피하는 달이에 지민이 웃음이 터졌다. 지민의 입에서 나온 기포가 위로 올라갔다.

그때 정국이 뒤에서 지민을 안으며 위로 끌어올렸다. 달이가 아쉽게 멀어졌다.

 

 

푸하.”

벌써 올라와요?”

 

 

지민이 살짝 인상을 쓰며 묻자 정국이 조금 황당한 표정으로 보다가 큭큭 대며 웃었다.

 

 

제가 아가미가 없어서.”

……!”

 

 

지민이 또 고개를 폭 숙였다.

부끄러우면 꼭 저러는데, 정국은 지민의 뒤통수를 마구 헝클이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이제 좀 괜찮아요?”

, !”

다행이네요. 장난기가 많아서 달려들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 마음을 금방 알아요. 무서워하는지 좋아하는지 미워하는지. 반성하는 거 보셨죠?”

.”

 

 

정국의 말에 지민은 어쩐지 자신이 더 반성하게 됐다. 늘 자신들을 외면하는 지민의 모습을 보며 느꼈을 감정들이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까는 별거 아닌 장난에 꽤 추하게 버둥댔으니 놀라도 단단히 놀랐겠지.

비단 벨루가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동물들은 생각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느낀다. 맹수는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다른 먹이들과 다름없이 본다. 오래 돌봐준 사육사라도 순간 감정이 무너지면 언제든 먹이가 될 수 있다. 개나 고양이들은 사람의 진심을 알아본다. 길들여지는 동물들의 비극은 사람의 진심이 변하기도 한다는 걸 모른다는 데 있다. 본능이 아닌 감정으로 상대를 대하면 동물들도 사람들과 똑같은 실수를 한다.

잠시 다른 생각에 잠기는 지민을 정국은 아차 하는 마음으로 불렀다. 지민씨, 괜찮아요.

 

 

금방 또 잊어버려요.”

 

 

별이 달이를 붕어 취급하는 정국에 지민은 풉 웃음을 터뜨렸다. 여름 내 멋대로 기른 머리가 젖어서는 앞으로 쏟아졌다. 정국이 저도 웃긴지 어깨로 웃으며 지민의 얼굴을 장난스레 들여다봤다.

 

 

진짠데.”

. 그런 것 같더라구요.”

 

 

지민이 사륵 웃었다. 그 바람에 정국은 잠시 넋이 빠졌다.

달이가 물을 가르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민이 돌아보자 얌전하게 다가온다.

 

 

또 들어가고 싶어요.”

, .”

 

 

정국이 머리를 가볍게 몇 번 흔들고는 단 위에 걸쳐둔 장비를 혼자서 착착 장착하고 지민을 이끌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달이가 별이 쪽으로 가더니 둘이 함께 지민에게 다가온다. 서툴게 허우적대는 지민의 공기통을 잡고 정국이 수조 안 이쪽저쪽으로 끌고 다녔다. 벨루가들이 지민에게 닿으려고만 하면 정국이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제 몸으로 막고 하는 통에 약이 바짝 올랐다. 별이 달이는 어느새 맹렬히 지민을 쫓고 있었다. 지민은 박장대소 하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연신 삼키는 웃음소리를 냈다.

곧 적응이 된 지민이 정국을 밀치고 달이에게 다가가 양팔 가득 안아보았다. 그때서야 지민은 물을 타고 전해지는 고음의 울음소리를 인식했다. 이명 같기도 하고 아기가 종알대는 소리 같기도 했지만, 확실히 숲을 가득 울리는 목청 좋은 새소리와 닮아있었다. 별이도 말을 걸 듯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하이톤의 울음소리가 양쪽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밀려들어왔다.

귀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까부터 차가운 물 속 있었는데 이제 와서. 지민이 번뜩 몸을 돌려 정국을 봤다.

지민을 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하고 웃더니, 어느 날 그랬던 것처럼 입모양으로 말했다.

 

 

좋죠?’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울릴 것만 같은 기억이었다.

 

 

 

 

 

 

 

 

겹겹이 비치 타올을 두른 지민이 몸을 달달 떨었다. 체력이 다 할 때까지 물속에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 오랜 시간 있지도 못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지치고 추운 건지, 이 순간 지민은 자신이 물고기가 아닌 게 그렇게 억울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정국이 지민 앞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까만색 머그잔을 내밀었다. 지민이 고개를 꾸벅하고 얼른 받아들었다. 머그잔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최대한 몸을 떨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좀 나아졌어요.”

얼른 옷 갈아입어요. 감기 걸리겠다.”

또 들어가고 싶은데…….”

안돼요. 너무 오래 물에 있는 거 안 좋아요.”

그래도.”

말 들어요. 지민씨 옷 말랐으니까 그것만 마시고 씻고 갈아입어요.”

정국씨는요?”

저도 갈아입어야죠.”

 

 

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따듯한 액체를 한 모금 머금었다.

 

 

으 달아.”

, 단거 싫어해요? 왠지 그런 거 좋아할 거 같아서.”

이거 뭐예요?”

코코아.”

 

 

어떻게 탄 건지 하도 까맣고 진해서 코코아라기 보단 초콜릿 퐁듀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이 나이 먹고 코코아 좋아하는 남자가 몇 명이나 있게요.”

그런가.”

 

 

정국이 머쓱하게 웃었다.

 

 

몇 살인지 물어봐도 돼요?”

 

 

최대한 착한 표정을 지으며 정국이 물었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통성명 한 번 못해 본 두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 나이같은 걸 말하려니 뭔가 어색해서 지민이 입을 오물거렸다. 저 사실 그쪽보다…….

 

 

코코아 좋아하면 이상한 나이는 몇 살부터인가 해서요.”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이는 말에 더 시간을 끌다간 정국이 무안해질 거란 생각이 든 지민이 급하게 답했다.

 

 

, 스물아홉이요.”

, 저보다 형이에요?”

놀랄 일이에요?”

놀랍죠. 당연히 나보다 어릴 줄 알았는데.”

실례 아닌가.”

, 죄송해요. 지민씨가 너무…….”

 

 

정국이 말을 멈췄다. 무슨 소리를 하려다만 건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부끄러운 소리였나 보다.

정국의 귀가 새빨갰다.

 

 

저 되게 형인 척 하지 않았어요?”

 

 

. 반칙이다.

지민이 몸에 두르고 있던 타올을 티 안나게 살살 풀어 내렸다. 조금 더워졌다.

 

 

, 알바하고 있을 나이가 아니기도 하니까. 휴학을 많이 했거든요.”

 

 

지민은 고개를 푹 숙인 정국을 향해 변명 비슷한 소리를 내뱉었다. 정국이 희미하게 웃으며 지민을 돌아봤다.

 

 

나는 몇 살 같아요?”

 

 

손가락이 제 얼굴을 가리키고 있다. 지민은 슬쩍 눈을 피했다.

 

 

. 스물일곱이잖아요.”

이잖아요? 알고 있었다는 소리네요?”

본인이 유명한 걸 탓해요. 듣기 싫어도 들리는 걸 어떡해요.”

그럼 공주님은 뭔데요?”

?!”

 

 

놀란 지민이 숨을 잘 못 삼켜 요란하게 기침을 했다. 정국이 놀라 지민에게 바짝 붙어 등을 두드렸다. 지민은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그건! 그건 어쩌다보니까…….”

알고는 있었어요. 주현씨가 나 그렇게 부른다는 거.”

. 주현이가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니에요.”

나쁘게 생각 안 해요. 그냥, 눈앞에서 자까지 붙여가며 불리니까 좀 민망해서.”

, 본명보다 더 많이 들으니까,”

 

 

지민이 말을 다 못 잇고 제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정국이 배를 잡고 웃었다.

 

 

반응 재밌는 거 알아요?”

 

 

정국의 입꼬리를 보다가 부쩍 가까워진 거리를 인식한 지민이 상체를 빼고 애꿎은 코코아만 훌쩍댔다. 온도가 처음 같지 않아서 더 달아져 있었다. .

 

 

나도, 지민씨에 대해 더 잘 알아야 공평할 거 같다. 그렇게 생각 안해요?”

 

 

지민은 더 이상 들키고 싶은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여봤다.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말하는 이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건 그런 일이었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정국은 대화를 참 자연스럽게 잘 이끄는 사람이었다.

가족관계나 집은 어디인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영화취향은 어떤지.

처음엔 초등학생들이 하는 문답놀이처럼 시작된 가벼운 질문들이 하나둘 이어지다가 점점 깊은 이야기로 빠졌다. 어느새 절대 말 할 생각이 없던 것까지 술술 말하고 있는 자신에 지민은 놀랐다.

 

 

수의학과요?”

.”

 

 

아니, 어쩌면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지니고 있던 축축한 모래주머니 같던 심정들을.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 운을 떼는데도 정국은 진지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나에게 실망하게 될까. 지민은 문득 궁금해졌다.

 

 

지민은 동물을 정말 사랑했다.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키우던 진돗개가 새끼를 낳는 걸 본 이후로 지민의 꿈은 늘 동물 곁에 있는 거였다.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 아이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는 그 장면을 지민이 끝까지 곁에서 지켜보던 모습은 집안 어른들 사이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었다. 커가면서는 동물을 직접 키우지는 않았지만 동네 길고양이들을 살뜰히 챙겨서 고양이를 몰고 다니는 존재였다. 동네에서 미움도 받았지만 지민은 개의치 않았다.

수의학과에 가는 건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공부하면서 어려운 것도 없었다. 정확히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웠고 길고양이들의 시신을 수습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가장 고비라는 해부학 실습도 어려울 게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민의 손으로 한 생명을 꺼버리기 전까진 말이다.

꽤 규모 있는 동물병원에서 실습을 했다. 순조로웠던 실습 마지막 날. 수술 후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 강아지 한 마리가 발작을 일으켰다. 의사가 8명이나 있었는데, 그 자리엔 지민뿐이었다. 지민이 신경 쓰던 아이였으니까. 수술 중이던 담당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 지민은 시간을 벌었어야했다. 허나 그 순간 지민은 발작하는 강아지에게 진정제를 투여했다. 아이는 그대로 잠들 듯 가버렸다. 이미 행해진 수술이 소형견이였던 그 아이에게 무리란 걸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담당의가 왔어도 살릴 수는 없었을 거랬다. 누구도 지민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는 실습생이었으니까.

감사해요.’

지민은 살리려한 적이 없다. 그 아이의 주인이었던 여자가 한 말이 그걸 깨닫게 했다.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수술 받기 전, 받는 동안, 받은 후.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직접 봤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시간을 벌어 다시 수술을 하고, 살려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 더 긴 고통의 시간을 보냈어야 할 것이다.

제가, 제가 먼저 초롱이를 편하게 해줬어야 하는데…….“

무너지듯 울면서도, 여자는 자꾸만 지민에게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자신에게 주사를 놓는 지민에게 녀석이 마지막 힘을 다해 깨문 자국이 새끼손가락 끝에 까맣게 남아있었다.

어려서부터 늘 동물과 함께했던 지민은 늘 자신이 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배고프다거나 놀아달라는 기본적인 신호를 넘어서 감정 같은 게 느껴지고 그것에 쉬이 동화되곤 했다. 새끼고양이의 시체를 물고 온 어미 고양이를 끌어안고 지민은 4시간 내리 운적도 있었다. 때론 말소리 들리는 듯한 착각도 들곤 했다. 이따금 애옹애옹 말을 걸어오는 고양이와 앉은 자리에서 꽤 오래 대화 비슷한 걸 하기도 했다. 지민은 그들과 소통한다고 느낄 때 행복했다. 그래서 그 순간 그런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저 아이는 그만 편해지고 싶구나.’

하지만 제 손가락 끝에 새겨진 건 살고 싶다는 신호였다.

 

 

여기에 아무것도 안했어요. 별로 아프지도 않았어요. 그게 아팠다고 하면, 너무 뻔뻔하잖아요.”

 

 

지민은 새끼손가락을 만지작대며 이 모든 이야기를 차게 늘어놓았다.

그저 실수인 줄 아는 선배들은 그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금방 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학교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계속 알바 인생이에요. 근데 또 멀리 못가고 동물들 주변 얼쩡대는 거 보면 저도 참 답이 없다 싶고.”

“.......”

그래서 전 여기 거리감이 좋았어요. 수조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해를 끼칠 수 없잖아요. 물론 도움도 줄 수 없겠지만. 그래서……정국씨의 존재가 더 소중했어요. 아이들을 사랑하고 너무 잘 돌봐주는 게 느껴져서.”

 

 

다행이다. 저 아이들에겐 제대로 된 사람이 곁에 있어서.

잠자코 듣고 있던 정국이 마른세수를 했다. 말을 고르느라 애쓰는 게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오랜 침묵 끝에 정국이 말했다.

 

 

두 시간 남았네요.”

 

 

지민이 정국을 돌아봤다.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정국의 얼굴을 봤다. 정국은 어렴풋이, 힘겹게, 웃고 있었다.

 

 

미안해요, 전 그냥…….”

몇 시간째 이러고 있었죠, 우리가?”

?”

퇴근 후로 못해도 8시간?”

…….”

지민씨. 당신이 나를 위로하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봐요.”

…….”

하물며 한 생명을 위하는 일에 소홀했다고 자신을 다그치는 건, 정말 너무해요.”

 

 

…….

난 이 사람을 사랑해. 지민이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걸 듯 생각했다.

지민은 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서툴게 닦았다. 자꾸 누가를 꾹꾹 누르니 금세 도드라지게 붉어졌다.

 

 

울지 말아요.”

 

 

정국이 조심스럽게 지민의 어깨를 잡고 자신을 보게 했다. 정국이 다정하게 말해오는 게 싫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자꾸 자극되는 기분이었다. 왜인지 알 수 없어, 더 혼란이었다.

 

 

별이 달이가, 안 갔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아무데도 안 갔으면 좋겠어요.”

지민씨…….”

정국씨 때문이에요. 내가 싫다고 했잖아요.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하냐구요.”

 

 

결국 지민은 엉엉 울며 정국에게 안겼다.

울 이유가 많고 많아서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마구 울었다. 그 이유가 자꾸 전정국이라는 이름 세 글자로 함축됐다.

 

 

너무 작은 생명이 너무 고통스러운 수술을 감당해야 해서, 지민은 자꾸만 그 아이를 들여다봤다. 케이지 안을 살피고 조금만 낑낑대는 소리에도 호들갑을 떨며 이름을 불렀다.

초롱아. 조금만 참자. 조금만.’

어서 건강해져서 나가기를 바라면서도 이미 들어버린 정에, 저 케이지가 비면 참 쓸쓸하겠구나. 생각했었다. 초롱이가 가고, 지민은 다음날 병원을 찾았다. 비어버린 좁다란 케이지를 하루 종일 보고 있었다. 아프면서도 지민이 다가오면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 생생했다. 미안하고 미안했는데, 더 큰 감정은 그립다는 거였다. 보고 싶었다. 주인도 아니고 정말 며칠 본 게 다인데. 죄책감보다 더 큰 감정이 그거였다. 지민은 자신에게 수의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결정해선 안 되는 걸 결정하고, 그에 대한 죄책감보다 그리움을 앞세워 뻔뻔하게 여기에 서있다니.

아니, 자신의 손에서 떠나간 생명들에 대한 그리움에 짓눌려 서서히 말라갈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두려웠다. 지민이 사람과도, 동물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 이유였다.

그만 다가와요. 그만 다정해요. 그만 울려요. 그만 좋아하게 해요. 내내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 울어요, 지민씨. 내가 잘 못 했어요. ? 제발…….”

 

 

그만 울라며 잘게 떨리는 눈꺼풀 새로 물방울을 떨구는 정국에, 지민의 자기방어 따위는 무너지고 마는 것이었다.

지민이 정국의 입가에 제 입술을 눌렀다.

서툴게, 제대로 맞추지 못한 입술끼리 지그시 붙었다 떨어졌다.

떨어지는 순간, 정국의 입술이 조금 급하게 다시 붙어왔다. 이번엔 제대로 아귀가 맞은 둘의 입술이 열리고 혀가 얽혔다. 정국이 고개를 꺾어 깊게 들어오니 지민은 울고 있던 목소리로 흐느낌을 흘렸다. 정국에게 완전히 끌어안긴 지민은 조금 안심이 되면서도 맞닿은 가슴이 아렸다. 미리 다가온 슬픔을 서로의 입술 사이로 삼키며, 짠기를 머금은 키스가 길게 이어졌다.

 

 

하아.”

 

 

점점 호흡이 밭아오는 지민에 입술이 잠시 떨어졌다. 지민의 속눈썹을 헤아리듯 보는 정국의 가슴도 못지않게 크게 들썩였다. 지민의 호흡이 정국에게 끼쳐왔다가 돌아갔다. 그 반복운동 사이로 지민이 속삭였다.

 

 

부탁이 있어요.”

……?”

 

 

나도 공연을 보고 싶어요.

 

 

 

 

 

 

 

 

밀키룸에 지민만을 위한 공연이 펼쳐졌다.

음악도 틀지 않았고 조명이나 거품 같은 효과도 없다. 사실 짜여진 건 아무것도 안했다. 벨루가들은 천천히 유영했고 정국도 편안한 호흡으로 수조를 누볐다. 그래도 지민은 황홀하게 바라봤다. 그들이 함께 있는 그 자체로 지민에겐 최고의 공연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보고 있던 지민이 일어나 수조로 다가갔다. 별이가 지민을 향해 마주 다가오다가 수조에 머리를 꽁 박았다. 지민이 빵 터져서 온몸으로 웃었다.

 

 

내가 지금도 물속에 있는 줄 아는 거야?”

 

 

그 사이 달이가 천천히 다가와 지민을 향해 고개를 숙이듯 머리를 내밀었다. 달이의 머리를 쓰다듬듯 수조를 더듬어보았다. 달이가 제 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지민이 눈을 휘며 짧은 숨을 뱉듯 웃었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정국이 벨루가들 사이로 끼어들어, 지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물속에 있을 때 제일 예쁜 정국은 오늘 따라 더 인어공주 같았다. 지민도 홀리듯 손을 마주 내밀었다. 어제까지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수조 속으로 당장 뛰어 들어가고 싶은 걸 보면 뭔가에 홀린 걸지도 모르겠다고, 지민은 생각했다.

 

 

 

 

 

 

 

다녀올게요.”

 

 

뜬 눈으로 밤을 지세고도 씩씩하게 특수 수송 차량에 오르는 정국을 지민이 배웅했다. 하루밤새 정국의 얼굴은 단단해져 있었다. 앞으로 여정이 고될 걸 알았기 때문도 있고, 더 이상 울어선 안 된다는 다짐 때문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낯선 시설에서 불편하게 움직여야 할 아이들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근심과 슬픔까지 보텔 순 없었다. 다 느끼고 다 알 아이들이니까.

지민은 정국이 걱정돼서 안절부절 못했다.

 

 

괜찮아요. 한두 사람이 아니잖아요. 돌아가면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다 할 거예요.”

그래도…….”

비행기 타기 전에 연락할게요.”

조심히 다녀와요.”

 

 

정국이 비행기에 타기로 한 건 갑자기 결정된 일이다. 원래는 공항에서 인계하는 것까지가 은하수의 몫이었다. 흰고래를 돌려보내는 것은 최초였기 때문에 비교적 연구가 잘 되어있는 러시아 쪽 전문가를 섭외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국은 아침에 기습적으로 대표의 방을 찾아갔다. 출근 하자마자 뛰쳐들어와 사비를 털어서라도 동행하겠다고 우기는 통해 대표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지민은 그 광경을 다 지켜봤다. 정국이 그렇게 악바리를 쓰는 모습을 처음 봐서 놀라긴 했지만 속으로 열심히 응원했다.

 

 

맥주, 좀 나중에 마셔야겠다.”

 

 

수송 차량 뚜껑이 닫히는 와중에 정국이 외치듯 말했다.

 

 

기다릴게요!”

 

 

차량이 출발하고 지민이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밤새 스스로의 감성에 시달린 탓에 피곤했다. 누가 보면 세기의 사랑, 세기의 이별이라도 한 줄 알겠네. 와중에 자꾸 여러 가지 걱정이 몰려왔다. 별이 달이, 정국에 대한 것들. 그래도 결국엔 모든 게 잘 될 거라. 잘 해낼 거라. 꼭 행복할 거라 믿는 수밖에.

그러니까 나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잔뜩 해야지. 망설이지 말고.

 

 

지잉

 

 

[지민씨. 형들이 우리 밤새 같이 있던 거 가지고 놀리는데 어떡하죠?]

[무슨 대화가 그렇게 애틋하냐는데.]

[저 뭐라고 말하죠.]

 

[별이 달이한테나 신경 쓰라고 하세요.]

 

[ㅠㅠ.]

 

 

지민이 저도 모르게 킥킥대며 아이처럼 웃었다. 그러다 입을 가리고 입꼬리를 쓸어내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어쩌면 자신이 낯설어지는 일인 것 같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아요.]

[별이 달이는 둘이지만, 전 혼자잖아요.]

[, 나 지금 완전 못됐죠.]

[취소할게요.]

 

[나 비행기 안타면 애들이 많이 실망하겠죠?]

 

[아침에 그 난리를 쳐놓고?]

[됐어요.]

[잘 보내주고 와요.]

 

[돌아갈 곳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돌아가고 싶게 해줘서.]

[꼭 하고 싶은 말 있는데, 돌아가서 할게요.]

[여기선 별이 달이나 신경 쓰고.]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 감당 안 되는 행복에는 조금 더 천천히 적응하기로.

밀키룸으로 돌아오니 빈 수조가 보였다. 아직 알바들은 출근 전이었다. 다행이었다. 눈시울이 주책없게 또 붉어져왔으니까. 너희들이 존재하던 이 곳은 내가 본 그 무엇보다 예뻤는데, 더 넓고 아름다운 곳으로 가게 돼서 다행이야. 더 행복해질 거잖아. 거기서 더 아름답게 노래할 거잖아.

수조를 들여다보던 지민이 피곤한 눈을 감았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상상력 같은 것을 최대한 긁어모아서 북쪽의 바다를 떠올려봤다. 몰려왔다가 다시 멀어져가는 것. 눈을 감으면 나에게 끼쳐왔던 아름다운 것들의 소리가 들린다. 멀어져갔다가, 다시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수조를 넘어 지민을 덮쳐왔다. 완전히 잠기는 것은 오직 시간 문제였다.

 

 

 

 

 

 

 

 

 

 

-fin

 

 

 

 

 

 

 

 

 

 

 

-

 

 

 

드디어 끝ㅠㅠ

기다려주셔서,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좀 뜬금없지만

돌고래들이 바다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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