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다락
[국민] 파도소리 中 본문
제 95차 국민전력 ‘내가 가르쳐 줄게요’, ‘아쿠아리움’으로 참여합니다.
2.
세상에서 가장 착한 표정을 지을 줄 안다. 아침에 출근해서 옷을 갈아입고 나면 어김없이 라커 문짝에 달린 거울을 보며 표정연습을 했으니까. 동료들은 표정관리까지 하냐며 놀렸지만, 정국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악의 없음. 흑심 없음. 나쁜 사람 아님. 때로는 좀 순진하고 때로는 좀 장난스럽게.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니지만, 인사정도는 나눠도 되지 않나? 적어도 눈인사 정도는.
“형. 혹시 나 좀……무섭게 생겼나?”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던 정국이 옆에서 옷을 갈아입던 선배에게 물었고, 그는 실없는 소리에 피식 웃어넘길 뿐이었다.
“긴장했냐?”
어린 알바들 만난다고. 덧붙이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정국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어. 좀 그런가봐.”
꼭 물어볼 거다. 날 왜 싫어하냐고.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거냐고. 실수할 틈은 있었냐고. 생긴 게 싫은지, 행동이 싫은지, 그냥 싫은 건지. ……와, 그냥 싫다고 하면 어쩌지. 너무 상처일 거 같은데. 그냥 물어보지 말까. 아 모르겠다.
호프집으로 가는 내내 정국은 필요이상으로 긴장하고 필요이상의 잡생각들을 했다. 그래도 결론은 하나였다.
더 이상 이렇게 답답하게는 못 살겠다.
오해가 있다면 풀 수도 있을 거고 설령 그냥 싫은 거라는 말에 상처를 받더라도, 좋은 쪽으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거잖아. 일단 물어보자.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정국은 지민 앞에 서자마자,
—저기요, 왜 나 싫어해요?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행보다 앞서 계단을 두 칸씩 올라 문 앞에 섰다. 그런데 어쩐지 문은 쉬이 밀리지 않았다. 그제야 제 속에서 기대감이 올라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더불어 좀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그전 밀키룸 담당이나 다른 알바생들만 하더라도 출퇴근 시에 고개를 꾸벅하는 정도의 인사는 주고받았었다. 그중에 좀 넉살좋은 사람들은 일하다 눈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기도 했었고. 그래서 이렇게까지 인사나 눈 맞춤에 신경을 썼던 적이 없었던 거겠지만. 이상하게 유독 지민에 대한 마음가짐만은 뭔가 달랐다. 음, 아마도 공연 할 때 닿는 시선 때문일 거다.
정국은 묵직한 문을 밀었다. 지나치게 익숙한 뒤통수가 정국의 시선을 맞이했다. 여전히 자신을 향해 꾹 다물린 등이 얄미웠다.
진짜 있다.
꼭 오라던 말이, 그가 여기까지 오게 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까. 아까부터 지나치게 들뜨고 지나치게 좌절했던 이유를 알겠다. 그냥 그런 확신이 들었다. 지민은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다.
파도소리
w. 문엔
[공주한테 니 번호 줬음!]
지민이 카톡 목록을 확인했다. 카톡은 단톡방 두 개를 제외하면 주현이 엊그제 보낸 것이 마지막 이었다. 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에게 아무 연락이 없는 거보면 들키지는 않은 것이리라. 그냥, 예의 없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산 정도면 차라리 낫다. 아니, 오해도 아닌가.
“야.”
“…….”
“박지민! 너 부르잖아.”
“어?”
지민이 퍼뜩 고개를 들어 주현을 봤다.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고 —누가? 물으니 턱짓으로 지민 뒤쪽의 수조를 가리킨다.
“아…….”
지민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애꿎은 콘솔을 계속 만져대는 통에 볼륨을 조절하는 페이드가 곧 닳아 없어질 것 같았다.
“내가 봤을 때, 저 유리 언제 한 번 깨진다.”
어제부터 그날 왜 그렇게 간 거냐고, 공주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집요하게 물어오더니, 오늘은 놀리는 걸로 방향을 바꿨다. 사실 정국이 크게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도 아닌데, 주현은 수조 안의 상황을 과장해서 전달했다. 지민은 저도 모르게 반응이 나오는 걸 숨길 수 없으면서도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어제오늘은 공연 중에도 최대한 정국의 시선을 피했다. 몰랐는데, 정면으로 눈을 맞추는 건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대강 움직임을 예상해서 할 수 있다. 다만, 정국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했던 공연과는 다를 것이다. 그래도 외면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지민의 필사적인 사과법이었다.
지민은 아르바이트를 관둬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겨울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여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학기는 복학을 할 계획이었다. 더 이상 도망치기도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마침 시기도 적당했다. 마침이라고 말하기도 슬프긴 하지만.
지민이 정국에게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입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남자끼리 어떻게’라는 문제도 있었지만 자신이 오래전부터 그걸 원해왔다는 걸 깨달아서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그는 지나치게 시선을 끄는 사람이었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알고 싶었다. 더 가까이 가서는, 닿아보고 싶었다.
그가 움직일 때는 온몸의 세포하나하나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여서, 고양이의 등허리를 쓰다듬을 때처럼 뼈마디나 근육이 움직이는 느낌을 훑어보고 싶었다. 살아있는 걸 만진다는 건 그런 거야. 예쁜 색깔의 털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인형이랑은 달라서 만져보면 놀랄 만큼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하거든. 살아있음이라는 감각. 반드시 그 뜨거움을 다시 원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그런 충동을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공연을 할 때 제 역할을 다 하겠다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고 그를 감상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생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을.
‘나 안 쳐다봤잖아요.’
지민은 눈을 감았다. 그런 정국이 자신의 옆에 앉고, 어깨가 닿고, 몇 마디의 말을 나눴다. 눈빛이 지나치게 다정했고 가슴이 살금거렸다. 그런 모든 것들이 지민에게 과한 자극이었다. 술이 없었다면 진작 도망갔을 텐데. 그래서 모든 수치스런 감정들이 한 번에 몰려오는 걸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 수조가 깨졌다. 지민의 안에서 일렁이던 물이 깨져 넘쳤다. 침범.
어쩐지 너무 오랜만에 마신 맥주가 유난히 달다 했다.
그런 술 한 잔에 꾸준히 힘겹게 외면해오던 것을 발견하고 토해내고 들켰다는 게 바보 같았다. 그게 비록 자신에게만 들킨 것일지라도. 아직 자신에게만 들킨 거니까. 수습할 수 있을 거야.
“야, 잠깐 와봐.”
아침부터 목소리를 깐 주현이 오픈 준비를 하는 지민을 불러냈다. 참을성이 없는 주현치고는 오래 참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기술실로 들어갔다. 주현이 긴 한숨을 쉬고는 전에 없이 진지하게 뜸을 들였다.
“나 최대한 차분하게 말 할 거니까. 좀 들어쳐먹자?”
“뭘.”
이번엔 지민도 질 생각이 없었다. 곱씹을수록 이건 너무 유해한 감정이었다. 그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지민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주현은 지민보다 한 살 어렸다. 격 없는 성격의 주현이 한 살 차이는 차이도 아니라며 넉살좋게 말을 놓고 친구처럼 대하기에 그냥 두었다. 그 외에도 지민이 져주는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지민이 한 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꺾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주현도 그걸 잘 알았다. 이틀 내내 지민의 눈빛은 황소고집이 발동했을 때의 그것이었다. 끽해야 육 개월 정도 안 사이지만 눈치 빠른 주현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평소에도 그리 호전적인 표정은 아니지만 살짝 굳은 눈썹과 입 꼬리가 지민의 인상을 묘하게 바꿔놓았다.
“오빠.”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오빠’소리였다.
“좀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민은 전에 없이 예민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켰다.
“동생들 보기 안 부끄러우시냐고요.”
“…….”
“은지나 혜정이나, 애들 다 나한테 와서 묻더라. 둘 다 왜 그렇게 기운이 없냐고.”
지민은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현은 회심의 카드를 꺼내듯 쥐고 있던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뭐야?”
“펴봐.”
지민이 곱지 못한 손길로 두 번 접힌 쪽지를 받아들어 펼쳤다. 손바닥만 한 쪽지에는 깔끔한 청색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오늘이 별이 달이 공연 마지막 날이에요.’
지민은 순간 눈앞이 흐려짐을 느꼈다. 원래도 물에 살짝 번져있던 글씨가 더 뿌옇게 보였다.
‘오늘 얘들이 좋은 공연 펼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지민이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음악 트는 거 꽤 재미있어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야?”
“…….”
“별이 달이, 좋아하잖아.”
지민이 주현을 쳐다봤다. 매달려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미끄러졌다.
“어이쿠. 진짜 우는 거야?”
지민이 손등으로 볼을 쓸며 고개를 저었다. 주현이 다가와 지민의 어깨를 살살 토닥였다.
“울 짓을 왜 하는데.”
주현이 장난스레 말했다. 지민은 괜히 눈물만 더 났다.
“나 이래봬도 엄청나게 개인주의자야. 남에 일에 신경 잘 안 쓰거든? 근데 이 밀키룸 생물들 너무 답답해!”
주현이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지민을 앉혔다. 그리고 수조를 향해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별이 달이, 우리 처음 왔을 때부터 오빠한테 얼마나 관심 많았는데. 오빠 있는 쪽만 졸졸 쫓아다니고 그랬다? 근데 오빠 대단할 정도로 안쳐다 보더라.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잖아. 쟤들이라고 알게 뭐야? 오빠가 별이 달이 인형사다가 구워 먹는지 삶아 먹는지. 공연에 감탄하는 관객들보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운 듯 웃는지.”
지민은 저도 모르게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이별이 피부로 다가왔고 미안함은 심장 근처에서 터져버렸다. 주현이 한숨 쉬며 다가와 분주하게 지민의 눈물을 훔쳤다.
“그만 좀 울어라. 지금 우리 근무 중이거든?”
지민은 주현의 손길을 피해 몸을 돌려 양팔로 제 얼굴을 끌어안고 울었다.
“오빠. 난 다른 말 하려는 게 아니라, 오빠가 못 보는 게 많다구. 오빠는 안 보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안보는 것보다 못 보는 게 더 많다고. 안 다치겠다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다가 볼 수 있는 것도 놓치지 말라구. 아깝게.”
정국이 수조로 들어왔다. 찬찬히 내려와서 별이 달이를 쓰다듬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기술실 안에 우뚝 서 있는 주현과 옆으로 쭈그리고 있는 지민을 발견했다. 주현이 정국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지민을 가리키며 우는 시늉을 했다. 정국은 반응도 없이 한참이나 두 사람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현이 피식 웃었다.
“저 사람이 제일 문제야. 아니, 사람인지 돌고랜지 똥개인지. 불쌍해 죽겠다니까.”
지민이 얼굴의 눈물을 급히 닦고 고개를 슬쩍 돌려 수조를 쳐다봤다. 정국의 모습이 보였다.
“오픈은 내가 할게. 진정되면 음향 세팅이나 하고 있으셔.”
주현이 문을 열고 나갔다. 정국이 물안경을 쓰고 있으니 눈이 마주치는 게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바라봤다. 이내 정국이 위로 올라갔다. 주현이 오픈하겠다고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어쨌든 최초로 정국이 먼저 지민의 눈을 피한 순간이었다. 금방 다시 내려올 정국을 알면서도 지민은 어쩐지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
지민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곧 공연이다. 지민이 급히 눈물을 닦았다. 정신 차리자. 잘하자. 그 어느 때보다 잘 하자.
세 번의 공연이 잘 마무리 되었다. 문 밖까지 그득그득 찬 관객들 중에 별이 달이의 공연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어보였다. 전에 없이 오버해서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고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이상하거나 신기하게 보는 눈들도 있었지만.
마지막 공연 끝에 정국은 고개를 깊이 숙이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호흡기도 없어 힘들 텐데, 정말 꽤 오래 그러고 있었다. 벨루가들은 그런 정국의 주위를 맴돌았다. 박수소리는 지민이 듣기 벅찰 정도로 오래 들려왔다. 지민은 이젠 짓무르다시피 한 눈을 또 한 번 움켜쥐었다. 멎을 듯 멎을 듯 이어지는 박수소리는 밀려드는 파도소리 같았다.
마지막 공연 후의 포토타임은 결국 할 수 없었다. 정국이 정신을 놓을 것처럼 울어댔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잘 설명해주니 다들 얼추 이해해주는 분위기여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은하수 직원들 모두 울상에 죽상이었다. 결국 쓰러지다시피 해서 의무실에 누워있는 정국을 몇몇의 알바생들이 보러가기도 했다.
며칠 전 술을 마시면서 생긴 단톡방에 올라온 상황보고를 주현이 읊어댔다.
“공주가 병원 안가겠다고 우겨서 대표님이 직접 와서 끌고 갔대.”
“그래서 병원 간 거야?”
“응.”
“다행이네.”
지민이 가슴을 쓸었다. 주현은 못지않게 아침부터 계속 울어대던 지민 역시 정국 옆에 눕혀 놔야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도 울만큼 울었는지 많이 진정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내일 새벽에 간다고 했지……?”
지민이 중얼거리듯 물었다.
“응. 내일 우리 출근하면 없을 거야.”
“…….”
퇴근까지 2시간 남짓 남아있었다. 2시간 후면, 다시는……. 지민은 주현과 대화하는 내내 수조만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못 본 것을 채우려는 듯. 그랬다. 쉬는 시간에도 수조 앞에 매달려 처음 보는 듯한 눈으로 벨루가들을 봤다. 오늘은 오히려 정국이 수조에 못 들어와서, 주현은 혀를 찼다. 참 타이밍 안 맞는 인간들이다. 덕분에 주현은 지민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 하루쯤은 괜찮겠지 하고 꼼꼼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2시간이 허무하게도 갔다. 이제 마감까지 15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저녁 공연 이후로 지민은 관객도 신경 쓰지 않고 별이 달이를 눈에 담는 통에 주현은 어이가 다 증발해버렸다. 성실한 척 매니저님 눈에 들 땐 언제고, 땡땡이 제대로 치시네. 주현은 못 이기는 척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와—! 엄마! 고래, 고래! 하얀 고래!”
관람객이 거의 빠지고 슬슬 마감을 준비하려던 주현의 앞으로 남자아이 하나가 뛰어들었다. 뒤따라 엄마라고 불린 사람이 들어왔다.
“우진아! 고래 놀래요. 천천히 가세요. 여긴 왜 이렇게 컴컴하지?”
아니, 기왕이면 급하게 가주세요. 저희 곧 마감인데. 주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꼬마는 아까부터 동상처럼 한쪽에 서서 수조를 들여다보는 지민을 빤히 보기 시작했다. 애 엄마는 꼬마보다 더 신나서 별이 달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진아. 얘네 너무 예쁘다. 그치.”
저기, 댁 아드님은 지금 다른 게 더 예쁜가본데요. 아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지민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형, 울어요?”
지민이 놀라서 꼬마를 돌아봤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이의 엄마와 아이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근데 눈이 빨개요.”
오. 아이의 팩트 폭력이 수준급이었다.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정곡을 찌르니 지민이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애 엄마가 꼬마를 돌아봤다.
“우진아! 모르는 사람한테 함부로 말 거는 거 아니랬지.”
하지만 아이는 쭐래쭐래 지민이 고개를 돌린 쪽으로 얼른 자리를 옮겼다.
“울면 바본데. 키도 되게 큰 형이 왜 울지?”
“어휴, 우진아!”
결국 엄마가 다가와 아이의 손을 잡아다가, 끌어안았다.
“죄송해요. 얘가 형아들을 좋아해서.”
“아, 아니에요.”
“어머, 근데 진짜 눈이 많이 빨간데.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습……흡.”
지민이 그대로 쪼그려 앉아 처량 맞게 울기 시작했다.
“아앗! 운다! 진짜 운다!”
“어머.”
아이는 또 팩폭을 마구 날렸다. 나 참. 팔짱끼고 있던 주현이 안 되겠다 싶어 다가갔다.
“형, 울지 마요.”
바르작거리며 엄마 품을 빠져나간 아이가 한껏 팔을 뻗어 지민을 감싸 안았다. 주현은 걸음을 멈칫하다가 꼬마에 손을 잡고 더 울음이 커지는 지민에 어이구, 하는 표정으로 다가갔다.
“저희야말로 죄송하네요. 오늘 흰고래들 집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라서요.”
“아, 네……. 괜찮아요. 많이 아끼셨나 봐요.”
“저희 은하수 마스코트다보니.”
“사실 그래서 저희도 늦은 시간에 무리해서 들어왔어요.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해서요.”
“네. 실례 많았습니다. 편하게 보세요.”
일으키려는데 지민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흐느껴 울며 정신을 못 차렸다. 그렇게 울고도 울 기운이 남았냐.
“정신 좀 차려봐.”
“누나. 형 이제 고래 못 봐서 우는 거예요?”
“응. 이제 흰고래들이 멀리 갈 거거든. 원래 살던 곳으로.”
엄마와 주현의 대화를 유심이 들었던 건지 꼬마가 진지한 눈으로 물었다. 그리곤 주현의 팔을 꾸욱 눌러 밀어냈다.
“형, 뚝!”
큰 소리에 지민이 살짝 놀라 아이를 올려다봤다. 얼굴이 엉망이었다. 아이는 야무진 손길로 눈물까지 닦아준다.
“그만 울고 고래 봐요. 저 따라 해요. 고래야. 빠이빠이!”
“…….”
“빨리요. 고래야. 안녕! 빠이빠이!”
“빠이…빠이?”
“나 말고 고래보고 해요. 손 흔들면서 빠이빠이! 잘 지내~”
“잘, 잘 지내.”
지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면서 쉰 목소리를 냈다. 주현은 웃음이 났다.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친구가 멀리 갈 때 울면 안 된대요. 친구도 슬프잖아요. 내가 울면 친구도 더 슬퍼지고, 우리 많이 슬퍼지면 행복한 기억이 멀리멀리 가버린 댔어요.”
“오…….”
주현이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감탄했다. 아주 감성적인 선생님인신가보다.
“그래서 나도 수빈이가 이사 갈 때 안 울었어요. 선생님이랑 같이 손 흔들면서 잘 지내~ 또 만나자~ 했어요.”
지민은 코를 훌쩍이며 간절한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 담긴 표정이었다. 지민의 얼굴을 놓은 아이가 수조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유리벽에 이마를 맞대자 장난꾸러기 벨루가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왔다. 별이 달이는 유독 아이들을 좋아했다.
“고래야! 잘 지내~ 또 만나~ 내가 이따 만큼 크면! 만나러 갈게~ 놀러 갈게~”
아이가 팔을 가득 벌려 큰 원을 그렸다. 지민은 아이가 하는 걸 지켜보다가 마찬가지로 수조에 다가서 손으로 짚었다.
“별이야, 달이야. 잘 지내! 또 만나……. 또 만나자!”
별이 달이는 아이 앞에서 시선을 돌려 지민을 쳐다봤다. 지민은 퉁퉁 부어버린 눈으로 수조 앞에서 미끄러지듯 무너졌다. 주현은 긴 한숨을 쉬었다. 저 인간이 하도 울어대서 울 타이밍을 놓친 주현도, 이번엔 참기 어려웠다.
잘했다고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이의 몸을 꽁꽁 묶듯 안고 지민은 펑펑 울었다. 아이가 형, 숨 막혀요. 할 때까지 꼭 안으면서, 지민은 자신이 진정으로 끌어안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새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별이 달이를 보러왔던 알바생들이 지민이 애를 끌어안고 엉엉 울고 있는 꼴을 다 봤다. 그때는 저들도 다 눈시울을 붉혀놓고, 막상 퇴근길에는 지민을 놀리기 바빴다. 민망해서 고개를 못 드는 지민의 반응이 재밌어서였다. 주현이 ‘기분도 꿀꿀한데 맥주 한잔 할까?’ 하는 걸 지민이 거절했다. 피곤하다는 한마디에, 주현은 그렇게 울었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고 놀려댔다.
“하긴 공주도 아파서 누워있는데 술은 무슨.”
“그러게요. 결국 못 돌아왔죠.”
“아까 단톡방에 괜찮다고는 하더만.”
“내일 일찍 애들 가는 거 봐야 해서 오늘은 바로 퇴근한다고 했어요.”
“내일 제대로 한 잔 하자. 밀키룸 담당들끼리만?”
“앗! 언니 너무해. 우리도 껴줘요!”
전해 듣는 정국의 소식이 낯설었다. 지민은 단체 톡방을 스스로 나왔었다. 힘없이 웃으며 대화를 듣던 지민이 제 손이 허전한 걸 깨달았다. 주머니와 가방에도 휴대폰이 없었다. 아까 입구에서 퇴근 종례를 하다가 데스크에 놓고 온 모양이었다. 지민이 늦게 오는 걸 알아챈 주현이 왜 그러냐는 듯 멈춰서 돌아봤다.
“폰, 놓고 왔나봐.”
“잘 한다. 얼른 가봐. 오늘 다들 일찍 퇴근 한다 그러던데.”
“먼저 가. 내일 보자.”
“혼자 집에 갈 수 있지? 가다 쓰러지면 안 돼!”
지민이 미간을 구겨 주현을 째려보고는 돌아섰다. 뒤에서 시원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쨌든 온종일 자신을 수습해준 주현이 고마워서 내일 맥주를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이 문이 아직 잠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관객 쪽 출입구는 불이 다 꺼져 살짝 음산했다. 경비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들어서는데 인포데스크 위로 휴대폰이 보였다. 폰을 집어 들어 화면을 켜보는데 혹시나 했던 연락은 없었다. 몸이 괜찮은 지 묻고 싶은데, 생각해보면 정국의 번호도 몰랐다. 내 연락처는 알아가고 자기 연락처는 안주는 건 뭐야. 살짝 억울했다. 하지만 막상 연락할 용기도 없었다. 주현에게 물어보면 당장에 알려주겠지만. 그런 쪽지까지 쓰게 했는데……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순간 진동이 울렸다. 지민이 얼른 폰을 들여다보았다.
[폰 찾았어?]
주현의 카톡이었다.
[응. 인포에 있었어.]
[아주 집어가기 좋은 위치에 있었네.]
[찾았잖아.]
[ㅋㅋ알았어. 조심히 들어가.]
[너도, 내일 봐.]
화면을 끄고 나가려다가 문득 불이 꺼진 안쪽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물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끌리듯 밀키룸 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그대로 두다가, 이내 돌아섰다. 다시 진동이 울렸다. 폰에는 익숙한 듯 낯선 이름이 떠올랐다. ‘전정국’
[지민씨]
지민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왔다. 진짜로 왔다. 다음 말이 있을 것 같아서 기다리는 데 한참이나 새로운 메시지가 뜨지 않아 화면이 꺼졌다. 네, 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다시 화면이 밝아지며 진동이 울렸다.
[지민씨]
네. 네, 네, 네. 대답하고 싶었다. 급하게 잠금을 풀고 대답을 입력하는데 다음 문장이 떠올랐다.
[많이 울었다면서요.]
[고마워요.]
지민이 휴대폰을 양손에 꼭 쥐고 고개를 들어 아까 보고 있던 밀키룸 방향을 바라봤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안쪽으로 보물처럼 벨루가들을 숨긴 공간이 있다는 게 낯선 동화처럼 느껴졌다. 내일 아침이면 끝이 날 동화였다. 정국에게 하고 싶은 수가지의 질문을 담은 발걸음을 떼서 밀키룸 쪽으로 달려갔다. 이유는 모른다. 미련인지, 망상인지, 가서 확인하면 되잖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밀키룸에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수조에 담긴 정국의 두 다리를 확인했다. 아 정말이다. 정말 있다. 벨루가들이 지민을 발견하고 돌아보았다. 그때, 정국의 다리가 수조를 빠져 나갔다. 지민은 놀라서 수조 벽에 매달려 쾅쾅 두드렸다.
“저, 저 왔어요!”
하지만 정국은 이미 자리를 뜬 후였다. 집에 가는 걸까? 지민의 행동이 의아한 듯 별이와 달이가 번갈아가며 지민의 앞의 왔다가 멀어졌다. 지민은 다급한 마음에 아쿠아리스트들이 다니는 복도로 가는 문을 찾아 밀키룸을 나섰다. 휴대폰으로 급하게 카톡을 치며 움직였다.
[저, 제가, 지금 밀키룸, 아니, 내부 복도로 가고ㅇ∣]
한 번도 열어 본 적 없는 문 앞에서 성큼 다가서며 자판를 치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놀라서 놓칠 뻔한 휴대폰을 겨우 다시 받아드는데, 문을 열고나온 장본인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놀란 토끼눈을 해서는 쳐다보는데 굳어버린 포즈가 이상했다.
“지민씨.”
“아, 공주님.”
“네?”
“아…!”
지민이 제 입을 막았다. 그만, 별명에 극존칭을 붙여 불러버렸다. 당황한 지민이 어버버 하는 사이 표정을 이상하게 구기고 있던 정국이 지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일단 들어와요.”
내부 복도는 조금 추웠다. 그리고 약간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정국이 이끄는 대로 걸으면서도 잘 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방수 코팅이 된 바닥이 약간 미끈거렸다.
“네, 제가 같이 있어요. 먼저 들어가세요.”
정국은 경비 아저씨와 통화를 했다.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알바생 때문에 놀라셨을 거다. 지민은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정국을 봤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와.”
은하수에서 두 번째로 큰 수조를 위에서 보고 있자니 거대한 수영장 같기도 하고 어딘가에 갇힌 바다 갖기도 해서 절로 입이 벌어졌다. 벨루가들이 기척을 느끼고 다가와 소리를 내며 반갑게 고개를 내밀었다. 아래를 흘끗 보니 위에서도 수조 바깥 쪽 밀키룸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지민은 수조가 곧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해졌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정국이 지민을 돌아봤다.
“어때요?”
“아, 저, 막 들어와도 돼요?”
“왜 막이예요. 지민씨는 우리 식구고, 옆에 숙련된 조련사가 있는데.”
“그래도…….”
“그래도 비밀은 지켜주세요.”
살짝 웃는 정국에 지민도 피식 웃었다. 정국이 별이, 달이 앞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지민은 옆에 있던 낮은 턱에 물기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살짝 걸터앉았다. 벨루가들이 까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정국과 장난을 쳤다. 저런 소리를 내는구나. 정국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두 녀석들을 번갈아가며 쓰다듬고 있었다. 지민은 다리를 모아 끌어안고 무릎에 턱을 괴고는, 눈앞의 예쁜 순간을 지켜봤다. 더 없이 비현실적이라고 느끼며.
그러다 까만 수트에 덮인 정국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만져보지 않아도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봤을 땐 편한 차림이었고, 수트를 입은 모습을 물 밖에서 마주하긴 또 처음이었다. 지민이 얼른 시선을 돌리며 생각나는 말을 급히 꺼냈다.
“병원에 갔던 건 괜찮았어요?”
“아, 네. 괜찮은데 사람들이 괜히 오버해가지고.”
정국이 지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걱정되죠, 당연히.”
지민이 조금은 엄한 투로 말했다. 정국은 눈을 휘며 웃었다.
“내 걱정했어요?”
“아, 아니 제 말은 사람들이…….”
“하하, 알아요. 그래서 튼튼하다는 거 보여주려고 돌아왔잖아요. 다들 퇴근해버리긴 했지만.”
“오늘은 대표님이 다들 일찍 들어가라고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러게요. 근데 지민씨는 왜 아직도 안가고 있었어요?”
“아……. 그냥 좀.”
정국이 별이 달이를 쳐다봤다. 둘은 수조를 헤엄치다 정국 쪽으로 왔다가를 정신 사납게 반복하고 있었다.
“헤어지는 거 아쉬워서?”
지민이 살짝 고개를 빼고 정국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울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지민을 돌아본 정국의 얼굴은 멀쩡했다. 엄밀히 말하면 멀쩡한 건 아니었지만. 둘이 잠시 서로의 눈을 봤다. 처음엔 맞죠? 하는 눈으로 개구지게 쳐다보다가 점점 가라앉는 눈을 하고 지민을 봤다. 이따금 들리는 찰박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사과 하고 싶었어요.”
지민이 먼저 눈을 피하며 말을 꺼냈다.
“그런 쪽지……쓰게 해서 미안해요. 마음 많이 힘들 텐데.”
정국이 힘없이 웃었다. 그리곤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괜찮아요. 내가 뭔가 실수를 했으니까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그냥 제가 좀……제 문제였어요.”
“그래요? 하긴, 뭐 내가 실수할 틈이나 주고 미워하면 모르겠어.”
“미워하다니요. 그럴 리가…….”
“것보다 오늘 느꼈어요? 우리 오늘 마지막 공연 때 호흡 완전 좋았잖아요.”
“네…?”
“그래서 뭔지는 몰라도, 지민씨가 저 용서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용서하기로 했고.”
지민은 뭔가 답답한 기분에 정국의 눈을 빤히 봤다. ‘그게 아니에요.’ 라고 눈은 말하고 있지만 입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정국이 살풋 한숨처럼 웃고는 일어나 지민에게 다가와 옆에 앉았다. 지민은 갑자기 다가오는 몸짓에 놀라 고개를 푹 숙였다. 정국이 가만히 지민의 정수리를 보다가 ‘지민씨’하고 나긋하게 이름을 불렀다. 지민이 고개를 틀어 빠끔히 쳤다봤다. 정국은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가 톡톡 쳤다.
“입을 써요. 눈으로 말하는 건 수조 밖에 있을 때 하고.”
“……말을 잘 못해요, 제가.”
지민이 짜증 섞인 손짓으로 제 머리를 헝클였다. 부쩍 가까운 정국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한 행동이기도 했다. 정국은 소리 내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공간의 벽을 타고 반사되어 지민의 귓가에 돌아왔다. 너무 듣기 좋았다.
“어려운 게 많구나, 지민씨는.”
지민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가슴 안에 감정은 맴도는데, 표현이 되어 나오지 못하니 갑갑해서 죽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저 사람처럼 자연스러워진다면 좋을 텐데.
“나한테 많이 미안해요?”
정국이 두 다리를 뻗고 상체를 뒤로 빼며 지민을 쳐다봤다. 팔은 단단하게 바닥을 지탱했다. 지민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술 사줘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고 있는 정국을 봤다. 큼, 살짝 목을 가다듬은 정국이 고개를 내려 지민을 마주봤다.
“술 마시면, 입이 좀 풀리시는 것 같던데.”
“또 실수 할지도 몰라요.” 다 말해버린다거나.
“그날 나 위로하려고 모인 자리라고 소문을 들었는데, 누구씨 때문에 흐지부지 파했다구요.”
“아…….”
“위로 좀 해줘요.”
정국이 씩 웃었다. 지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갈까요? 내일?”
“피곤하지 않겠어요? 오늘 늦게 갈 거잖아요. 내일 오전에 일찍 나와야 할 거고.”
“저 오늘 여기서 잘 거예요.”
“여기서요?”
“가끔 애들 아프면 자고 갈 때도 있어요. 당직실 침대가 내 방보다 좋아서 오히려 꿀잠자요.”
예의 시원스런 미소에 지민은 웃음이 나왔다.
“내일 가는 거예요! 와 기대된다.”
“술 좋아해요?”
“뭐 술도 좋지만, 내일 좋은 일 하나쯤은 만들고 싶었어요.”
지민은 자꾸만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자꾸 지민의 입을 꾹 막는 건 정국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주 밤새 질리도록 봐둬야지. 지민씨 같이 있어줄래요?”
“네……?”
“또, 또, 긴장한다. 해본 말이에요.”
“있을래요.”
지민은 이번에는 자기 검열 없이 내뱉었다. 지민도 오늘 참 많이 울었다. 처음 지민을 울린 건 두 가지 감정이었다. 정국에게 미안한 마음과 별이 달이와의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후자의 마음이 더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이랍시고 의식을 치루 듯 비장하게 인사하고 돌아서도 끈임 없이 보내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종국에는 주현이 지민을 끌고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지민은 방금 정국과 벨루가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자신은 정국과 있는 별이 달의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이 힘들다는 걸. 그 환상적인 공연과, 벨루가들을 보며 웃는 정국의 모습. 함께 노는 세 마리의 돌고래는 정말 동화 같았다. 그걸 이제는 볼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이별도 동화 같았다. 가장 안타까운 이별을 하는 주인공들 같았다. 다만 거기엔 악역이 없고 그래서 더, 정국이 감당해야할 슬픔은 보다 현실적인 것이었다.
지민은 정국의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별이 달이와 노는 정국을 두 눈 속 깊이 담아두고 싶었다.
정국이 놀란 눈으로 지민을 쳐다봤다. 지민은 자신이 한 말에 놀라 심장이 뛰면서도 정국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락해달라는 눈으로 정국을 또렷이 쳐다봤다. 정국이 입을 뻐끔 거리다 말했다.
“침대 하나 밖에 없는데…….”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이 무슨, 배 끊긴 섬에서 여관방 하나 남은 소리를…….
그때, 별안간 두 사람한테 물벼락이 떨어졌다. 심심했던지 별이 달이가 고개를 빼고 입으로 물을 뿜은 것이었다. 것도 두세 번을 연달아 그랬다. 꽤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는데도 쫄딱 젖어버렸다. 정국은 익숙한 일인 듯 머리를 털어 넘기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지민을 보고 낄낄대며 웃었다. 보던 중 제일 신난 표정이었다. 지민이 욱해서 소리쳤다.
“이게 뭐예요!”
“난 잘 못 없어요?”
정국이 과한 제스처로 두 팔을 들어보였다.
“여기까지 들어오면서 그 정도 각오도 안했어요?”
“이런 짓 하는지 몰랐어요.”
“관심이 없었네. 만날 이러고 노는데요? 그나저나 지민씨 큰소리 내는 거 들으니까 내 속이 다 시원하네.”
“아 정말, 갈아입을 옷도 없다구요.”
지민은 방언이 터진 사람처럼 투덜댔다. 살짝 예민한 성격이 발동한 것이었다. 정국은 계속 사람 좋게 웃기만 했다.
“젖은 김에 애들한테 가까이 좀 가 봐요.”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조로 다가갔다. 지민도 일단 일어나긴 했다. 반바지 밑단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정국은 별이 얼굴을 잡고 장난스레 흔들었다. ‘형아 화났잖아. 너 어떡할 거야.’ 하는데 지민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쟤들 저 싫어해요.”
지민이 옷을 털며 말했다.
“왜요?”
“모르죠. 원래 잘 쳐다도 안보고, 지금은 물이나 끼얹고.”
“에이 그건 그냥 장난 친 거예요. 일단 와 봐요.”
지민이 다가가려다가 주춤거렸다. 정국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무서워요?”
“음, 무서운 것 보다는…….”
“나 있잖아요.”
정국이 팔을 뻗어 지민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또 다시 물벼락이었다. 달이 소행이었다. 정확히 지민을 노렸다. 아까는 앉아있어서 머리랑 어깨, 다리 위주로 젖었는데 이번엔 아래쪽에서 몸통에 정통으로 물이 끼얹어졌다. 입고 있던 하늘색 체크 셔츠가 물어 젖어 축 늘어졌다. 아…….
“방금 꺼 공격 맞죠.”
지민이 턱을 타고 주륵 흐르는 물을 닦으며 말했다. 결국 정국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지민씨 진짜 미움 받나 봐요.”
“……저는 그냥 갈까 봐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같이 있어주기로 해놓고.”
웃음을 참아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지 정국은 연신 큭큭거렸다.
“안녕히 계세요.”
제대로 욱한 지민이 고개까지 숙여 공손하게도 인사하고는 뒤돌아섰다.
“어어, 지민씨!”
정국이 일어나 지민의 앞을 가로막았다. 정국의 가슴이 코앞에 있었다.
“진짜 은근 성질 급하시네?”
“어차피 쫄딱 젖은 채로 잘 수도 없고.”
“옷은 내가 빌려주면 되잖아요. 샤워장도 있고.”
“그냥 세 분이서 오붓한 시간 보내는 게…….”
정국은 구시렁대는 지민을 보며 계속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집어 삼켰다. 지민은 살짝 정국을 째려봤다.
“삐지지 마요. 내가 친해지는 법 알아요.”
“…….”
“진짠데? 저도 이 방법으로 친해졌어요.”
“…….”
“친해지지도 못하고 보내면, 후회남지 않겠어요?”
또, 또. 말문 막히게 한다.
“어떻게요?”
지민은 결국 정국에 맞춰주기로 한다. 친해지고 싶은 진심은 자존심을 위해 밀어두고.
“음…….”
정국이 진지한 얼굴로 지민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지민은 괜히 셔츠 끝을 잡아 물기를 짜내며 끌어내렸다. 젖은 몰골이 신경 쓰였다.
“따라와 봐요.”
정국이 지민의 손목을 잡아채서 앞장서 계단을 내려갔다. 발걸음이 어쩐지 신나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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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여 쓰기의 달인..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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